AI가 사이버 공격 문턱을 낮추고 있다. 취약점 탐색과 공격 코드 작성, 침투 경로 분석까지 AI가 수행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 보안업계가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규제와 장비 도입 중심으로 성장해온 K-보안 산업은 'AI 해킹' 능력을 갖춘 미토스의 등장으로 체질 개선 압박을 받고 있다.
보안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미토스 자체보다 그 이후의 변화다. 일부 고급 해커나 국가 수준의 공격 조직이 활용하던 공격 자동화 기술이 일반화될 경우 침해 사고의 빈도와 속도는 달라진다. 공격자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대상을 노릴 수 있다. 보안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기업·기관이 먼저 흔들린다.
국내 보안 시장은 오랫동안 공공·금융 규제와 인증 제도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시장이 규제 준수에만 매몰되면 실제 위험을 줄이는 기술보다 점검기준을 만족시키는 제품이 우선될 수 있다. 보안업체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문제 해결형 기술보다 국내 제도에 맞춘 기능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규제는 필요하지만 규제가 지배적이면 안 된다"며 "AI 공격 시대에는 무엇을 샀느냐보다 실제 침해를 얼마나 빨리 탐지하고 대응하느냐가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장비 판매 중심 구조도 문제다. 국내 보안업계는 방화벽, EDR, NDR 등 솔루션을 납품하고 유지보수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EDR은 PC·서버 등 단말의 이상 행위를 탐지·대응하는 솔루션, NDR은 네트워크 트래픽을 분석해 비정상 통신과 침입 정황을 찾아내는 솔루션이다.
미토스 이슈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보안업체들을 불러 대응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업계는 정부가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업체를 불러 의견만 들을 게 아니라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공공기관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며 "전 세계적으로 미토스 쇼크가 한창인데 정부 보안사업은 실제로 시작도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K-보안의 해외 경쟁력 문제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보안업체들은 한국식 규제와 고객 요구에 맞춰 제품을 고도화해왔다. 국내 시장에서는 강점이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해외 고객이 원하는 것은 특정 규정에 대응하는 기능보다 실제 공격을 막고 사고를 줄이는 보편적 효용이다.
AI 공격 시대에 이 격차가 커지면 글로벌 보안기업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보안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소버린 산업 중 하나다. 공공기관, 통신망, 금융망, 제조 설비, 데이터센터 보안이 해외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디지털 주권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국내 기술이 실제 사고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과 기관도 글로벌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국내 보안 시장이 규제 대응에서 사고 대응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규정을 지켰는지보다 실제 침해를 탐지하고 차단했는지, 사고 이후 피해 확산을 줄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기업이 자체 보안 전문가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서비스형·구독형 보안 모델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오랜 기간 북한 등 국가급 위협에 노출되며 다양한 침해 사고를 겪었다"며 "이 경험을 실제 대응 기술과 서비스로 전환한다면 K-보안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