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제약고혈압치료제 '카나브'(성분명 피마살탄)는 국내 발매 첫해인 2011년 터키 제약사 압디와 4580만달러(약 550억원) 규모로 수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얼마 뒤 압디는 수출계약을 파기했다. 터키 정부가 한국 내 가격을 토대로 약가를 산정하는 데 한국 가격이 너무 낮아 상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보령제약은 2010년까지 18년간 500억원을 쏟아부어 국내 최초 고혈압치료제를 개발했다. 2011년 발매 당시 업계는 카나브 약효를 고려했을 때 1000원(120㎖ 용량 기준)은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는 기존 고혈압 치료제 가격을 들어 807원으로 약가를 매겼다.
정부는 3년 뒤인 2014년, 사용량이 늘면 약가를 내리는 사용량-약가연동제에 따라 카나브 약가를 781원으로 내리더니 올 3월에는 또다시 774원으로 인하했다.
◇제네릭에서 신약으로… 약가도 패러다임 바뀌어야= 정부는 이처럼 일관되게 신약 가격을 낮추는 데 주력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약가 인하 장치는 견고하다. 매년 실거래가를 파악해 표시 약가를 내린다. 또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약에 적응증(치료 가능 질환)이 추가되면 시장이 그만큼 넓어졌다며 약가를 추가로 조정한다.
일례로 2002년 국내에 출시된 TZD 계열 당뇨치료제 아반디아4mg 가격은 1774원에 책정됐다. 2008년 또 다른 당뇨 치료제 DPP-4 계열 자누비아100mg이 한국에 진출할 때는 아반디아가 대체제 역할을 해 1020원에 가격이 매겨졌다. 2014년 SGLT계 포시가10mg은 784원이었다.
같은 약을 두고 일본은 정반대 가격을 매겼다. TZD계 액토스15mg이 1999년 일본에서 119엔(1250원)에 산정된 뒤 2009년 자누비아100mg은 279엔(약 2900원), 2014년 포시가10mg은 308엔(약 3200원)에 팔렸다. 일본은 R&D 투자가치를 인정해주면서 한국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 것이다.
◇'수출대박'의 꿈, 국내부터 대접해줘야= 국내 제약산업이 제네릭(복제 의약품) 위주였던 시절에는 정부의 이 같은 정책이 국민과 제약업체 모두에 득이 됐다.
하지만 제약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세운 만큼 이제는 약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약업계는 적어도 세계 최초 혁신신약에는 정부의 전면적인 약가산정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네릭 시대에서 혁신신약 시대로 흐름이 바뀐 만큼 약가 산정에 수출 전략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제약업계는 독일 등 제약 선진국에서 구사하는 환급형 위험분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우순 한국제약협회 보험정책실장은 "희귀의약품에 적용하는 위험분담제는 환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해외에 수출할 때 약가를 우대받을 수 있다"며 "혁신신약 수출전략으로 위험분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약협회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 등 제약 선진 7개국의 평균가격을 그대로 적용해주되, 7개국의 최저가격 사이 차액을 건강보험에 환급하는 방식을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여기에 적응증을 추가하거나 약품 판매가 늘었을 때, 실거래가 조사 등에 의한 약가인하 단행시기를 혁신신약 특허 만료 때까지 유예해줄 필요성도 언급한다. 약가가 계속 낮아지면 수출 상대국에서 국내 가격을 빌미로 현지 약가 인하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실거래가 조사 약가인하를 신약 특허만료 때까지 유예해줘 신약개발에 들어간 R&D 투자비를 조기에 회수할 수 있게 해준다"며 "특허가 끝나면 유예분을 일괄 인하해 제네릭의 시장확산을 도모한다"고 말했다
◇"신약 1개당 수출 효과 1조원"= 혁신신약과 수출 전략은 눈앞에 다가온 얘기다. 당장 상반기 중한미약품의 표적폐암신약 HM61713이 품목허가 대기 중이다. 이 약은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에 7억3000만달러(약 8700억원)에 기술수출이 이뤄진 '효자 신약'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대박'이 예고되면서 약 가격에 업계 시선이 모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카나브 사례에서 보듯 국내 가격이 형편없이 책정될 경우 해외 제약사가 더 이상 국내 기술을 사들일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라며 "이는 제약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위험분담제 등이 도입되면 혁신신약 1개당 평균 1조원 상당의 수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R&D 투자 여력 확대로 이어지고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장 실장은 "제약산업을 국가적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약가 우대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연구개발 능력을 키워야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고 고부가 신약을 지속적으로 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