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투약에 25억원에 이르는 노바티스의 '졸겐스마'는 1년째 건강보험 급여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킴리아의 건강보험 등재 이후 초고가 의약품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 가능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국내 200여명의 환자 중 일부는 '생후 24개월'인 치료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졸겐스마 외에 '럭스터나', '빈다맥스'도 등도 건강보험 등재 문턱에서 정부 결정만 기다린다. 이 약들은 국내에서 처방을 허용하는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현재까지 투약받은 환자는 제약사의 무상기부 프로그램 참가자나 의료진이 본사에 직접 연락해 요청한 경우로 총 10명 남짓이다. 업계와 환자들은 건강보험 등재 확대 시그널을 보낸 새 정부에 기대가 크다.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7일 개최한 올해 4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졸겐스마는 논의 대상으로 오르지 못했다. 한국노바티스가 지난해 5월 졸겐스마의 급여 등재를 신청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 단계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약제가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이 되려면 총 4단계를 거쳐야 한다. 먼저 제약사가 급여 등재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대 120일간 비용효과성, 급여적정성 등 경제성을 평가한다. 경제성이 적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건강보험 약가 협상에 최대 60일, 보건복지부 고시까지 최대 30일이 걸린다. 총 210일 정도 걸린다.
문종민 한국척수성근위축증 환우회 이사장은 "24개월 미만 환우 가족들은 24개월을 넘기기 전에 급여 적용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면서 "급여 적용이 될 때까지 환자가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병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라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바티스 관계자는 "건강보험 등재 신청 이후 공식적인 절차에서 진전이 없다"면서 "보완 요청이 온 부분에 대해서는 다 전달했다. 1년 정도를 기다리게 되면서 졸겐스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중 24개월이 넘어 못 맞게 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심평원은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를 철저히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약사에 자료 보완을 요청하고 다시 검토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양측이 자료에 대해 논의중인 기간은 급여 심사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졸겐스마는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다. SMA는 태어날 때부터 SMN1 유전자의 결핍이나 돌연변로 인해 척수와 뇌 사이에 존재하는 운동신경세포의 기능이 손상된 질환이다. 근력저하, 근위축 등 식사와 움직임이 어렵고 호흡 문제로 생명까지 위협한다. 전 세계적으로 신생아 1만명 당 1명꼴로 발병한다. 국내 환자는 2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로슈의 '에브리스', 바이오젠의 '스핀라자' 등이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고 스핀라자는 건강보험 급여 적용 대상이지만, 졸겐스마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기존 치료제는 백업 유전자인 SMN2에 관여해 평생 투약해야 하는데 졸겐스마는 SMN1 유전자를 기능적으로 대체해 한 번 투약만으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생아 기준에 벗어나 투약을 받지 못하는 환아가 생길 수 있다. 철저한 평가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약이 필요한 환자 중 일부는 치료 시기를 놓친다. 미국과 일본 등 앞서 졸겐스마를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적용한 국가에서는 급여 적용 제한을 24개월로 설정했다. 전 세계적인 가이드라인을 따라 우리나라도 비슷한 기준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심사 기간 동안 생후 24개월을 넘어선 아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노바티스의 '럭스터나', 화이자의 '빈다맥스'도 건강보험 급여를 신청한 이후 정부만 쳐다본다.
럭스터나는 유전성 망막질환(IRD) 치료제다. 망막색소변성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 발현 환자에 투약하는 약으로 치료비가 약 5억원에 이른다. 노바티스는 지난해 10월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했다. 빈다맥스는 희귀질환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의 치료제다. 비정상적인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을 안정화해 체내 아밀로이드 축적을 지연시킨다. 국내에서 허가받은 유일한 치료제로 약물 치료 비용만 연간 2억5000만원에 달한다. 화이자는 두 차례 건강보험 등재 신청을 했다.
고액의 치료제가 건강보험이 등재되기 전 환자 본인부담 100%로 투약받는 환자는 거의 없다. 세 약을 투약받은 환자는 국내에서 총 10명 정도다. 제약사의 무상 기부 프로그램이나 의료진이 직접 제약사에 요청한 환자들만 치료제를 맞았다. 국내 투약자들은 졸겐스마 6명, 빈다맥스 3명, 럭스터나 1명 등이다.
김동현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회장은 "ATTR은 대부분 유전성이라 가족 내 환자가 또 있을 수 있다"며 "한 집에 환자가 3명이나 있기도 하다. 가족 내 복수의 환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제적 부담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차일피일 정부 결정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업계와 환자 가족들은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새 정부 출범 전 국민의힘은 중증 희귀질환 환우 가족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고가 항암제·중증 희귀질환 신약 신속등재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근에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사장단이 보건복지부와 '신약 보장성 확대'를 주제로 실무 협의를 했다. KRPIA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초고가 의약품 보장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업계 복수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의약품 건강보험 등재와 관련한 분위기가 더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지배적"이라면서 "다만 희귀질환의 위험성을 감안해 하루라도 빨리 환자가 맞을 수 있도록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