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집어삼키며 몸집 불린 '수도권 큰 병원' 체질 개선 속도 붙나

박정렬 기자
2024.03.10 10:54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전공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고 있는 7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03.07. lmy@newsis.com /사진=이무열

전공의 집단행동은 역설적으로 "경증 환자는 1·2차 병원, 중증 환자는 3차(상급종합) 병원"이라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촉발했다. 정부는 투약·검사·처방 등 의사의 진료 권한을 차례로 해체한 데 이어 장기적으로 1·2·3차 병원의 역할을 명확히 나눌 방침이다. 외래 중심의 환자 수 감소로 오늘날 '수도권 큰 병원'의 매출 감소와 규모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비상진료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비비와 건강보험 재정 등 약 3000억원을 투입해 병원에 남은 의사에게 비용 보상 등 혜택을 주고 추가 인력 채용 등을 독려하고 나섰다. 의사를 대신해 일하는 PA간호사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개방하는 등 부족한 의사를 대체할 수 있는 정책도 잇따라 내놨다.

환자의 의료기관 이용 행태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전공의는 전문의를 따기 위해 기초·임상 교육과 수련을 주로 3차 병원(수련병원)에서 받는다. 큰 병원일수록 전공의가 더 많다. 서울대·서울아산·서울성모·삼성서울·세브란스 등은 이 비율이 최소 33.8%에서 최대 46.2%에 달한다. 전공의 이탈로 의사 공급이 적은데 기존처럼 환자 수요가 몰리면 남은 의사들이 버틸 수 없다. 중증·응급 환자는 필요한 처치를 제때 받지 못하게 된다.

주요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현황/그래픽=조수아

공급 부족 상황에 수요 조절은 필수적이다. 각 병원은 외래와 수술·입원을 조절하며 대응한다. 정부는 환자를 포함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 "위중한 분께 큰 병원을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증 환자는 동네 병·의원으로"라는 공익 광고를 서울역 등에 내걸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 광고를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공유하며 "경증 환자는 동네병원에 가고, 중증 환자와 위급한 분만 큰 병원에 가는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어야 남은 의료진이 버틸 수 있다"며 국민 참여를 당부했다.

정부와 병원의 선제 대응으로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고 있다. 전공의 이탈이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의료를 막론하고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이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6일 12시 기준 응급실 일반병상 가동률은 29%,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은 71%로 집단행동 이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도 전공의 집단행동 초기(2월 19~29일) 총 781건에서 이달 4일 이후 77건→58건→66건→59건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경증과 중증등 환자는 각각 1차(병·의원), 2차(종합) 병원이 맡고, 중증 환자는 3차(상급종합) 병원이 책임지는 의료전달체계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서울역 대합실 전광판에 “위중한 분께 큰 병원을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증환자는 동네 병·의원으로”라는 공익 캠페인 광고가 걸려있다./사진=한덕수 국무총리 페이스북 캡쳐

정부는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촉발된 의료전달체계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안착시키려는 목표가 있다. 전체 의사의 10%도 안 되는 전공의가 빠진다고 빅5 병원이 '마비'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수년간 전공의 근무 시간은 줄어왔고 도중에 이탈하는 경우도 빈번해 지금과 같은 전공의 중심의 대형병원 운영이 점차 어려워질 것이란 점도 잘 알고 있다. 전문의를 위주로 위중증 환자는 '큰 병원'을 가고 감기·만성질환자는 '동네병원'을 가는 의료전달체계를 확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 공급에 필요하다고 정부는 판단한다.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런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필요성과 방향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전 실장은 "이런 상황(전공의 이탈)이 계속되면 장기적으로 합리적 의료 이용,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진료를 담당하고 경증과 중증등은 2차 병원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차 병원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은 의무화도 검토해 나가겠다"라고도 덧붙였다.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외래가 환자로 가득차있다./사진=박정렬 기자

만약 정부가 본인 부담률 조정 등으로 이런 환자 수요를 조절하면 이미 비대해진 빅5 병원 등 대형병원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까지 고혈압·당뇨병 약을 타러 '수도권 큰 병원'을 찾는다. 병원도 낮은 수가를 극복하기 위해 값싼 노동력(전공의)을 이용해 박리다매 정책을 펼치다 보니 경증 환자라고 내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환자가 1, 2차 병원으로 가면 의료 수익의 40%가량을 책임져 온 외래가 당장 환자 수 감소에 직면한다. 외래 진료 이후 이어지는 검사·치료도 줄어 지금처럼 쉴 새 없이 장비를 돌리기 힘들어진다.

지난 8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는 외래 진료를 보려는 환자로 가득했다. 전공의 이탈로 대형병원의 병동·수술실은 텅텅 비었는데 외래는 북적이는 것은,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병원이 외래는 최대한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환자 총 346만 9589명 중 외래 환자는 331만 3333명으로 95%를 차지했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전달체계가 개편되면 대형병원이 그동안 늘려놓은 시설과 인력을 지금처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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