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률이 50%가 넘는 조류독감으로 미국에서 입원했던 중증환자가 지난 6일 결국 사망한 가운데, 중국과 인도에서도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HMPV) 감염자가 늘면서 감염병 확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국내에서도 독감 환자가 이례적인 속도로 빠르게 늘고 있어, 전문가들은 '변이 가능성'과 '코로나19 때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이 바이러스 감염병 확산의 원인은 아닐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8일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으로서 가장 염려되는 바이러스 감염병은 조류독감(AI·조류인플루엔자)"이라며 "(바이러스가 살아남기 위해) 치명률이 지금보다 약간 낮아지더라도 사람과 사람 간 전파력이 강해지면 인류를 위협할 정도로 무서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닭·오리·칠면조·야생조류 등을 감염시켜온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병원성(감염체가 전염을 통해 숙주 개체로 전파된 후, 감염을 통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고병원성 △약병원성 △비병원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고병원성의 H5N1형 바이러스는 조류독감 유형 중에서도 치명률이 53%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H5N1형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H5N1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독감 환자가 지난해 12월18일 위독한 상태를 보여 병원에 옮겨졌는데, 이 환자는 결국 지난 6일 숨졌다. 미국 내에서 H5N1 감염자가 '중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도, 사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3년 이후 19개국에서 860건 이상의 조류인플루엔자 인체 감염 사례가 보고됐고, 이들 중 약 53%가 사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H5N1형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300종 이상의 조류와 40종 이상의 포유류를 감염시켰고,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쉼터에서 고양이들이 AI에 감염된 냉동닭을 먹고 폐사된 사례가 있다. 엄중식 교수는 "포유류 간 감염이 확산했다는 건 사람 간 감염 현실화도 눈앞에 왔다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H5N1형 바이러스 감염자의 '치명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선 사망률이 높으므로 '전파력'은 비교적 낮겠지만, 변이를 일으켜 코로나19나 독감 정도로 전파력이 강해지면 '넥스트 펜데믹'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HMPV)가 확산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질병관리청(질병청)에 따르면 국내 병원체 표본감시 결과에서도 최근 4주간 HMPV 검출률은 증가세(지난해 12월1~7일 3.2%→ 12월22~28일 5.3%)다. 질병청은 "HMPV는 매년 어린이와 노약자를 대상으로 일정 수준 유행하는 바이러스로, 5세 이하 소아의 호흡기 감염 중 2~3%를 차지한다"며 "일부 국가에서 HMPV 병원체 검출률 증가가 확인되나 유의할 만한 특이 동향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내 HMPV 확산세에 대해 우려할 수준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엄중식 교수는 "중국의 발표대로 중국 내 HMPV 감염증이 예년보다 낮은 수준에서 유행한다면 괜찮지만, 만약 HMPV가 유독 증가한다면 기존보다 전파력이 강하게 변이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환자가 여느 때와 달리 계속 증가한다면, 증가 요인이 단순히 계절성이 아닌 변이됐을 가능성은 없는지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HMPV에 대처할 백신도 치료제도 아직 없다는 것. 엄 교수는 "HMPV에 걸리면 나을 때까지 스스로 버티는 방법밖에 없다"며 "코로나19와 달리 HMPV에 쓸 백신도, 항바이러스제도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사람이 HMPV에 걸리면 감기 같은 증상과 함께 일부에선 폐렴을 앓고 지나가며 대체로 회복한다. 하지만 항암치료 중인 암 환자, 간·콩팥 등 고형장기를 이식받아야 하거나 이식받고 면역 억제제를 먹는 사람, 조혈모세포 이식 환자 등 고위험군에겐 회복될 때까지 병원에서 증상을 다스리는 보존적 치료(스테로이드·항생제 투여, 고용량 산소 투여, 인공호흡기 장착 등)를 받아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바이러스는 독감으로, 8년 만에 최대 규모로 유행하고 있다. 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달 22~28일 인플루엔자 의심 환자는 외래환자 1000명당 73.9명을 기록했다. 지난 2016년 외래환자 1000명당 86.2명을 기록한 이래 최고치다. 엄중식 교수는 "코로나19를 제외하고 HMPV·독감 등 호흡기 바이러스는 차고 건조한 환경에서 활동성이 증가해 주로 가을·겨울에 유행한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 때 장기간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이 줄었고, 그에 따라 개인별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해진 게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