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몇 명으로 할지 아직 결정내리지 못한 가운데, 등록한 의대생들 사이에서 '수업 거부'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대선기획본부'를 공식 출범하면서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의협 내부에선 정작 세대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대정부 투쟁을 위한 내부 결속에 비상이 걸렸다.
14일 교육부와 대학가에 따르면 '4월 중'엔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결정해야 한다. 대입전형 기본사항에 따라 각 대학이 4월 말까지 대학입학전형지원시스템에 학과 개편이나 정원 조정 사항 등을 신청해야 해서다. 앞서 정부는 3월 말까지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할 정도로 의대생들이 돌아오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5058명에서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월 말로부터 2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결정내리지 못한 상태다.
이는 '등록은 했지만 수업은 거부하겠다'는 의대생이 많아지면서다. 가톨릭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 의대생들은 9일 공동성명을 내고 수업 거부 투쟁을 선언했고, 경희대·아주대 의대생들도 수업 거부에 동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는 10일 교육사정위원회를 열고 학칙에 따라 실습수업 일수가 부족한 의대 본과 3·4학년생 110여 명에 대해 '유급'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연세대도 7일 의대 본과 4학년 48명에게 유급 예정 통보서를 보냈고, 아주대·전남대·인하대·전북대 등도 이번주 본과생 유급이 결정될 것으로 전해졌다.
의대생들의 대규모 유급이 코앞에 닥치자 의사들의 투쟁은 더 강해졌다. 의협은 지난 13일 대선기획본부를 출범하고 4월 중으로 의정 갈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정갈등 상황에서 의사들이 원하는 바를 담은 '요구사항'을 공약에 담은 대선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대선기획본부는 '대선 전'이라도 이들의 요구사항을 현 정부가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 민복기 대선기획본부장(대구광역시의사회장)은 "현재 의정갈등에서 여러 문제가 있지만 반드시 지금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에서 4월 중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각 대선 후보님들까지 가는 6월까지 가면 의정 갈등이 해결되기 더 어렵다"고 강조했다.
의협 정경호 대선기획본부장(전라북도특별자치도의사회장)은 "의협이 제시하는 대선 의료 정책들이 각 당 대선 후보 공약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각 당의 의료 정책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필요하면 수정·보완해서 갈등을 사전에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정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의대생들의 집단 수업 거부가 확산하면 의대 모집인원을 기존보다 2000명 늘린 5058명으로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윤석열표 의료개혁'의 수장(윤석열 전 대통령)이 없다는 점,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점, 의협의 요구사항을 대선 후보들이 공약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정부가 의대 증원책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대목으로 읽힌다.
대선기획본부를 필두로 의협은 오는 20일 숭례문 일대에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고 정부를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의대생 단체들도 SNS에 총궐기대회 홍보물을 게시하는 등 동참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반격을 시작한 의협 내부에서 의료정책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세대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결속력에 금이 갈 조짐이다.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선 오는 20일 예정된 전국의사궐기대회 이후 대응방안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이날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강경 투쟁을 촉구하며 기성세대 의사들의 소극적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20일로 예정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앞두고 기성세대 의사들에게 휴진, 사직서 제출 등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달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공의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의학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무조건 학교로 돌아가라는 선배들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며 "선배들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직접 정부와의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기성세대 의사들은 강경 투쟁보다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주문하며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의협회원인 한 시도의사회장은 "지난해와 같은 사직서 제출이나 휴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투쟁이 아닌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협 내 세대 갈등 조짐에 서울 소재 의과대학 A교수는 "의협 내부의 갈등이 길어지면 의료 현장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며 "내부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정치적 상황까지 확대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