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주권 확보, 일명 '소버린 AI'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가운데 '한국형 의료 특화 AI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단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 삶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의료 영역에 집중된 고도화된 AI 모델이 필요하단 제언이다.
서준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AI기본의료태스크포스(TF)장(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형 의료특화 AI 개발 공동 세미나'에서 "한국 의료 상황에 맞는 AI 모델을 구글 제미나이(AI 플랫폼)로 만들기는 어렵다"며 "국가 차원의 통합 의료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해 만든 '보건의료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FM)'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 FM은 방대한 데이터로 훈련받은 거대 AI 모델을 말한다.
AI는 이미 의료 현장 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종의 검색 엔진인 '오픈 에비던스'를 의료진 절반 이상이 활용 중이다. 이는 최신 치료 가이드라인 등 전문 의학 정보를 제공하는 거대언어모델 기반의 의료진용 플랫폼이다. 서 TF장은 "의료 AI의 경우 의사 면허시험을 통과할 수준의 지능으로 개발한 뒤, 전공의 수련처럼 특정 분야 훈련을 거치면 인간에게 필적한 전문 AI를 만들 수 있단 콘셉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 TF장은 AI의 의료 혁신의 방향성을 △생산·효율성 증가 △의료 수준 개선 △의료 접근성 강화 △퇴원 후 관리 등을 포함한 의료영역 확대의 크게 4가지로 압축했다. 서 TF장은 "질병 관리 발생 예측형 모델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전체 의료비 지출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동네 병원 의사가 AI의 도움으로 대학병원 진료만큼의 정확도를 갖게 된다면 3차 병원으로 쏠리는 국내 의료 접근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를 위해선 한국형 보건의료 독자 FM 개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서 TF장은 짚었다. 그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단 디지털 전환의 관점에서 높은 수준의 의료 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서도 의료 데이터 확충, 독자적 FM 확보와 이를 통한 AI 기본의료 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데이터 공유가 가장 중요하단 의견도 나왔다. 대통령 주치의기도 한 박상민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가정의학과) 교수는 "치료 중심의 사후 대응적 의료 체계에서 벗어나 예측·예방·지속 관리 중심의 '선제적 의료 전달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여러 국가 단위 데이터베이스를 AI와 접목하는 데 있어 허들이 존재하는 만큼 구조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공립 의료기관 대상의 클라우드 기반 AI 병원정보체계(HIS) 도입과 국민건강 데이터 레이크하우스(대규모 데이터 저장소를 제공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아울러 클라우드 기반 AI HIS 등과 가치 기반 지불보상체계까지 연동한 'K-헬스 클라우드 패키지'를 개발하면 한국형 모델을 세계 표준으로 확장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 자체를 수출하는 국가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민감 정보인 의료 데이터의 공유는 아직 규제가 존재한다. 정부도 이를 해결해 의료 AI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은 "의료 데이터 생산자는 가장 수혜자임과 동시에 자칫하면 손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단 딜레마가 있다"며 "헌국은 어느 나라보다 질 좋은 의료 체계를 보유한 만큼 이 딜레마만 잘 풀어내면 AI 이니셔티브 확대에도 매우 유리할 것으로 본다. 위원회 차원에서도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