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액상형 전자담배, 니코틴 파우치, 잇몸에 니코틴을 녹이는 구강 담배(스누스)… 금연이 힘든 흡연자에게 주어진 선택지인 비연소 니코틴 제품군이다. 최근 인도·캄보디아·브라질·멕시코·중동 등 여러 나라에서 강력한 금연 정책의 일환으로 전자담배 판매 금지 등 비연소 니코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을 제한한 가운데, 이런 규제 강화의 근거로 활용된 소재들이 대체로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이 해외 학자들 사이에서 제시됐다.
4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글로벌 니코틴 포럼(GFN, Global Forum on Nicotine) 2026'에서 그리스 출신 의사 콘스탄티노스 파살리노스(Konstantinos Farsalinos) 파트라스대학교 교수는 "2019~2020년에 걸쳐 미국에서 벌어진 '에발리(EVALI) 사태'는 전자담배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 흡연 통제·위해저감 협회 창립자 겸 현 부회장이다.
그가 언급한 '에발리(EVALI) 사태'란, 저산소증과 급성 호흡부전으로 병원에 실려온 16세 소년이 급성의 중증 폐 손상 의심환자로 분류됐고, 대마성분(THC, Tetrahydrocannaninol)가 든 전자담배를 사용한 게 원인으로 의심된 사건이다.
앞서 미국에선 전자담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다는 신조어인 '베이핑(vaping)' 후 폐가 손상당해 사망한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전자담배를 즐긴 사람에게서 생긴 이 병에 대해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중증 폐질환(E-cigarette use or Vaping Associated Lung Injury, EVALI)'이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내 EVALI(베이핑으로 인한 중증 폐질환) 발생 의심 사례는 2019년부터 늘다가 2020년 2월18일 기준 환자 2807명, 사망자 68명이 발생했다. CDC는 "베이핑 관련, 폐 손상 입원 사례 2200명 중 82%가 THC가 포함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파살리노스 교수는 "해당 소년이 '급성'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전자담배는 2019년 이전에 이미 10년간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사용해 왔고, 어디에서도 급성 손상의 유행은 없었다. 이게 전자담배가 원인일 수 없었던 첫번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마초 피우는 행위를 단순히 '흡연'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기기(전자담배)를 통해 대마초를 기체로 만들어 흡입하는 방식도 '베이핑'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며 "전자담배는 주로 니코틴을 함유한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핑이 일반담배 흡연을 유발할 것'이란 통념도 전자담배가 뒤집어쓴 누명으로 지목됐다. 아리엘 셀랴(Arielle Selya) GFN 과학 자문위원은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베이핑을 많이 한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보다 일반담배 흡연율이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주장의 배경을 뜯어보면 베이핑하는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 △위험을 추구하는 성향 △가족·친구의 일반담배 흡연 등 '전제조건'이 통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둘의 연관성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주장과 반대로 일반담배 흡연을 먼저 하면 베이핑할 가능성이 크다는 과학적 근거는 있다"며 "베이핑이 일반담배 흡연으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글로벌 니코틴 포럼은 더 나은 니코틴 제품이 흡연자들의 금연 전환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유일한 국제 학술·정책 컨퍼런스다. 지난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처음 열린 후 매년 개최됐으며, 올해 13번째 대회로 지난 3~5일(현지시간) 다시 바르샤바에서 열렸다. 세계 각국의 연구자, 의사, 공중보건 전문가, 정책 입안자, 소비자단체 대표 등이 한자리에 모여 근거 기반의 담배 위해 감소(THR, Tabacco harm reduction) 접근법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