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마운자로 같은 새로운 비만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가운데, 똑같은 제품을 똑같은 양만큼 주사해도 다이어트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심지어 주사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 사람도 적잖다. 개인별 체중 감량 효과가 다른 원인을 찾아내 개인별 맞춤형 비만치료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5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비만대사영양센터장)는 "똑같은 비만치료제를 사용해도 누구는 다이어트 효과가 드라마틱한데, 누구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때"라며 "이런 배경을 밝히기 위한 '후성 유전학' 연구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후성 유전학이란, 각 사람이 가진 유전자가 어떤 요인으로 작동(발현)하는지는 연구하는 학문이다. 똑같거나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더라도 해당 유전자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쌍둥이 연구다. 2016년 스웨덴·덴마크·핀란드에서 쌍둥이 20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암에 걸렸을 때 다른 쌍둥이도 암에 걸릴 확률은 46%, 같은 종류의 암에 걸릴 확률은 38%에 그쳤다. 즉, 유전자가 거의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라도 절반 이상에서 암 발생이 일치하지 않았다.
비만치료 효과도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 교수는 "거의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 중 동생은 뚱뚱한데 언니는 날씬한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어릴 때 헤어져 매우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을 비교해 보니 비만도부터 질병 위험도까지 매우 달랐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둘의 유전자가 같더라도 1명의 유전자 중 단 1개만 강하게 발현돼도 비만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비만 유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환경과 생활 습관에 따라 비만 유전자의 활성 수준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비만에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10%도 채 안 된다"며 "가까운 미래 비만치료는 비만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만 보고 치료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 정보에 생활습관 정보까지 더해진 후성유전학 정보를 보고 맞춤형으로 환자에게 맞는 변화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맞춤형 비만 치료의 5대 축으로 △유전체·후성유전체 △4대 생활습관(영양·신체활동·수면·스트레스) △비만 유발 환경 △연령 △비만치료제 등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만환자에 대한 진단명을 단순히 '비만'으로만 정의할 게 아니라 △식욕 항진형 △대사 저하형 △정서적 섭식형 △활동 저하형 등으로 세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누구나 태어날 때 이미 건강과 질병에 관한 정보가 유전자에 코딩돼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는다"며 "유전자는 비만해질 가능성을 제시할 뿐, 그 가능성이 실제로 비만으로 드러날지는 그 사람의 환경과 삶의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근 비만치료제를 주사한 후 근육량 변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살을 뺄 때 지방뿐 아니라 근육까지 빠지면 기초대사량이 낮아져 요요가 나타날 위험이 커져서다. 그는 "현재까지는 GLP1을 주사했을 때 젊은층은 근육량이 대부분 유지되지만 고령층에서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비만환자 가운데 GLP1을 주사했을 때 어떤 사람에게 체내 단백질의 양이 유지되는지, 어떤 사람에게 줄어드는지 등을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유전·후성유전을 고려한 비만 치료를 설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후성유전학 연구 결과는 노화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혈액에서 유전자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살펴 △암 발생 가능성 △뼈·근육 건강 △뇌 건강 △대사 건강 등을 객관적인 수치로 추정하는 기술, 이른바 '후성유전학 시계'가 가시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