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임상 단계 기업은 이미 많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전임상 기업들과 교류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GL을 통해 우리도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 역시 우리에게서 배운다"(베레나 스토커 릴리 게이트웨이랩스(LGL) 유럽 총괄 부사장)
세계 최대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운영하는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릴리 게이트웨이랩스'(Lilly Gateway Labs, LGL)는 단순한 공유 연구실이 아니었다. 유망 바이오텍에 연구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초기 단계부터 함께 연구하고 배우며 차세대 혁신 기술을 키워내는 글로벌 혁신 허브였다. <머니투데이>는 '바이오 USA' 기간인 25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LGL을 직접 찾아 릴리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살펴봤다.
샌디에이고 LGL은 지난해 문을 연 미국 내 다섯번째이자 가장 최근 개소한 거점이다. 세계 최대 바이오 행사인 바이오 USA가 열린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 차량으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 글로벌 바이오텍과 투자사, 연구기관이 밀집한 바이오 클러스터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내부는 독립 연구실과 공용 실험시설, 회의실, 라운지 등으로 구성됐으며 최대 15개 바이오텍이 입주할 수 있다.
LGL은 겉으로 보면 바이오 스타트업을 위한 공유 연구시설이지만 실제 운영 철학은 전혀 달랐다. 릴리가 강조한 것은 연구 공간보다 '과학'과 '협업'이었다. 릴리는 임상 단계 이전의 초기 바이오텍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연구 환경과 개발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공해 혁신을 앞당긴다는 구상이다.
LGL은 릴리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인 '카탈라이즈360(Catalyze360)'의 핵심 축이다. 릴리 벤처스(Lilly Ventures), 익스플로R&D(Explore R&D), 튠랩(TuneLab)과 함께 전략적 투자와 연구공간, 연구개발 전문성, 첨단 기술 접근성을 제공하며 초기 바이오텍 생태계를 지원한다.
입주 기업 선정 기준도 기업 규모나 개발 단계가 아니라 '과학'이다. 스토커 부사장은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과학의 질(Quality of the science)"이라며 "새로운 자산과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는 기업을 찾는다"고 말했다. 릴리 핵심 치료 영역은 물론 새로운 연구 기회가 있는 분야까지 폭넓게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입주 기업들은 독립 연구공간뿐 아니라 릴리 연구진과의 멘토링, 연구개발 전략 자문, 외부 투자 네트워크 등을 지원받는다. 다만 입주 자체가 릴리의 투자나 기술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토커 부사장은 "릴리 벤처스의 투자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좋은 기업이라면 투자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과도 가시적이다. LGL 입주 기업들이 유치한 누적 투자금은 30억달러(약 4조원)를 넘어섰고, 개발 중인 신규 치료 자산은 150개 이상이다. 릴리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2곳을 비롯해 보스턴, 샌디에이고, 필라델피아, 상하이 등 세계 주요 바이오 클러스터에 LGL을 운영하며 혁신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LGL 모델은 한국에도 도입된다. 릴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전략적 협력을 통해 인천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에 LGL 기반의 오픈이노베이션 거점을 구축할 예정이다. 2027년 7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해당 시설은 연면적 약 1만1705㎡ 규모로 최대 30개 바이오텍이 입주할 수 있어 샌디에이고 LGL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를 갖추게 된다.
송도 거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랩 아웃사이드와 연계해 운영된다. 릴리의 과학 및 치료 분야 전문성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 생산역량 및 CDMO 네트워크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이다.
운영도 양사가 함께 맡는다. 이상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업체를 공동으로 선발하고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며 "릴리 기준에 맞춰 공동으로 평가하고 공동으로 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릴리 직원들도 상주할 예정"이라며 "교육 프로그램은 릴리가 맡고 시설 관리는 삼성이 담당하지만 전반적인 사항은 공동으로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