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0세 이상 당뇨병 환자가 600만명을 넘어서면서 당뇨병을 효과적으로 개선하고 합병증을 막기 위한 조기 집중 치료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에 의학계에선 당뇨병 진료지침을 최근 개정했지만, 정작 급여 기준이 15년 전에 머물러 있어 엇박자를 내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대한당뇨병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당뇨병 환자 치료 기회 확대 위한 신약 처방 지침 개정 심포지엄'에선 대한당뇨병학회가 개정한 당뇨병 진료지침 최신판이 공개됐다. 이날 조영민 대한당뇨병학회 진료지침이사(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새 진료지침에 실린 핵심 내용은 혈당 수치 중심의 약제 선택에서 벗어나 당뇨병 동반질환에 따라 임상적 이득이 입증된 약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한 점"이라고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심부전·만성 콩팥병을 동반한 환자에게는 SGLT2(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2) 억제제를,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이 동반된 경우엔 GLP-1RA(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 또는 SGLT2 억제제를 우선 사용하도록 권고된다. 이는 당뇨병 치료의 목표가 혈당 조절을 넘어 심혈관·콩팥 합병증 예방과 장기 예후 개선으로 확장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2011년 정부가 고시한 '당뇨병 약제 보험급여 일반원칙'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단 지적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경구용 당뇨병 치료제로 '메트포민'(Metformin)을 단독으로 우선 사용하고, 이후 다른 약제와 병용하거나 인슐린 치료를 단계적으로 추가해야 한다.
이에 대해 조 이사는 "메트포민은 안전하고 경제적인 약제지만, 환자의 동반질환과 임상적 위험에 따라 SGLT2 억제제나 GLP-1RA 등 예후 개선 효과가 입증된 약제를 우선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면서 "모든 환자에게 메트포민을 일률적으로 우선 적용하는 것은 환자 중심 접근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급여 원칙이 당뇨병 환자별 개인 맞춤형 치료의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개인 맞춤형 당뇨병 치료를 축구에 빗댔다. 조 이사는 "축구는 △점유율 △패스 성공률 △득점 △파울 △실점 △선수 연봉 △승점 등 7가지 상황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서 "승점을 올려야 하는데 점유율만 강조하거나, 득점 전환율이 낮거나, 역습 상황에서 수비로의 전환이 미흡하면 축구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환자 개인 맞춤형으로 당뇨병을 치료하려면 △혈당 조절 △합병증 예방 △체중조절 △저혈당 예방 △부작용 고려 △비용 고려 △증상 조절 등 7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당뇨병 새 진료지침과 정부의 급여 기준이 엇박자나면 당뇨병 치료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화 대한당뇨병학회 보험이사(부천세종병원 내분비내과 과장)는 2011년판 보험급여 기준이 15년째 기존 틀에 머물면서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만 처방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뇨병 치료제의 병용요법 중 DPP-4 억제제와 SGLT2 억제제, 싸이아졸리딘다이온(TZD)과 SGLT2 억제제 등 기전상 합리적인 조합도 급여 제약을 받는 경우가 있다"며 "환자 상태에 맞춘 초기 병용이나 맞춤형 강화 치료가 늦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 보험급여 일반원칙은 메트포민을 초기 치료제로 두고 특정 약제 조합을 제한하며, GLP-1RA 사용에도 선행요법이나 체질량지수(BMI) 등 요건을 두고 있어 실제 임상에서 다양한 환자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결국 무엇이 가장 적절한 약제인가보다 무엇이 급여가 되는가가 처방의 기준이 되는 상황이 생긴다"고 했다.
이에 대한당뇨병학회는 ▲1차 사용 약제 기준의 유연화 ▲동반질환에 따라 SGLT2 억제제∙GLP-1RA 1차 약제 우선 사용 ▲합리적 병용요법 조합의 확대 ▲인슐린 및 GLP-1RA 기준 개정 등을 당뇨병 약제 일반원칙의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김 이사는 "급여 기준과 진료 지침 간 격차가 커지면서 환자가 가장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당뇨병 약제 보험급여 일반원칙은 단순한 비용 통제 장치가 아니라 환자의 예후와 치료 접근성을 좌우하는 기준인 만큼, 최신 근거와 진료지침을 반영한 전면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혁상 대한당뇨병학회 학술이사(여의도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여러 주요 임상 연구들을 통해 SGLT2 억제제와 GLP-1RA가 심부전·만성 콩팥질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제가 됐고, 체중 감량 효과까지 입증되면서 2형 당뇨병은 완치의 영역까지 넘보는 만성질환이 됐다"며 "이제는 충분한 임상 근거를 갖춘 이들 치료제를 당뇨병 환자에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