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바이오협회가 정부가 신설을 추진 중인 국내생산세액공제 대상에 백신을 포함해달라고 공식 건의했다. 정부가 미래 팬데믹에 대비해 국산 백신 개발을 통한 '백신주권' 확보에 나선 가운데 연구개발(R&D)을 넘어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확대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바이오협회는 지난 19일 신설되는 조세특례제한법 제29조 국내생산세액공제 적격품목에 백신을 포함해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재정경제부에 제출했다. 국내 생산의 비용경쟁력을 높여 기업의 생산과 투자를 유도하고 백신 공급망 안정과 보건·경제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내생산세액공제는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신설을 예고한 제도다. 국내에서 직접 생산·판매한 물량과 품목별 기준공제액 등을 토대로 법인세를 공제해 보호무역주의와 공급망 불안에 대응하고 국내 생산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대상은 태양광발전·풍력발전·이차전지·반도체·핵심소재·인공지능(AI) 로봇부품 등 국내 생산기반이 취약한 6대 분야다. 적용기한은 2036년 말까지다. 정부는 국회 논의와 후속 법령 마련 과정에서 업종별 협·단체와 협의해 대상품목과 적용요건, 기준공제액 등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백신을 대상에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높은 해외 의존도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내에는 자체 개발 백신이 없어 해외 제약사가 개발한 제품 확보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된 2021년 국내 백신 수입액은 21억3822만달러(약 2조9800억원)로 전년 대비 621% 급증했다. 자체 개발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감염병 위기가 발생하면 해외 조달 규모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팬데믹 이후에도 필수백신 공급망의 취약성은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기준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 백신 22종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품목은 6종으로 자급률은 27.3%에 그쳤다. 자급률은 10년 가까이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신종 감염병뿐 아니라 평상시 사용하는 필수백신도 상당 부분을 해외 공급에 의존하는 셈이다.
정부는 백신주권 확보를 위해 국산 백신을 개발할 R&D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플랫폼과 자체 백신 개발을 지원한다. 정부 지원을 받은 국산 코로나19 mRNA 백신 후보물질은 지난달 임상 2상 시험계획 승인 신청 단계에 진입했다.
업계는 개발 성과를 실제 공급으로 연결하려면 국내 생산시설을 평상시에도 유지하고 기술 변화에 맞춰 고도화할 수 있는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신은 대규모 설비와 엄격한 품질관리 체계가 필요하고 수요가 불규칙한 상황에서도 시설과 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일회성 보조금만으로 생산기반을 지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내에 생산역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백신 생산액은 8605억원으로 전년보다 2.7% 증가했다. 다만 전체 바이오의약품 생산액 증가율 11.2%와 비교하면 증가 폭은 제한적이었다. 2023년 말 기준 최소 36개 국내 기업이 108개의 백신 R&D 파이프라인을 보유했고, 국내 기업이 세계보건기구(WHO) 사전적격성평가(PQ) 인증을 받은 백신도 지난해 11월 기준 23개에 달한다.
이미 보유한 개발·생산 역량을 안정적인 국내 공급으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라는 게 업계 목소리다. 또 공급 강화를 통해 기존 개발 역량 역시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백신업계 관계자는 "백신은 품목에 따라 연구개발에 10년 이상이 걸릴 만큼 장기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분야"라며 "국내생산세액공제가 개별 제품의 가격경쟁력으로 곧바로 연결된다기보다 생산을 통해 확보한 세제혜택이 신규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투자 여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생산 확대가 원부자재와 장비, 품질관리, 충전·포장 등 바이오 소재·부품·장비 수요와 지역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업계가 기대하는 효과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GC녹십자는 각각 경북 안동과 전남 화순에 주요 백신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비수도권 생산에 최대 1.5의 지역별계수를 적용하는 제도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정부는 국내생산세액공제가 예외적·보완적 성격인 만큼 대상품목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다. 현재 6대 분야도 국내 생산기반의 취약성과 필수수요, 국가적 영향, 녹색전환 및 경제안보상 중요성, 통상분쟁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우선 순위로 선정했다는 설명이다.
재정경제부 조세특례과 관계자는 "여러 기준과 절차를 거쳐 최우선 순위에 있는 6대 분야를 선정했다"며 "국내생산세액공제가 예외적이고 보완적인 제도여서 대상을 너무 넓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백신의 추가 가능성에 대해서는 "된다,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확대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