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 환자가 급증하면서 보청기도 빠르게 진화한다. 최근 수년간 AI(인공지능)를 탑재한 보청기들은 저마다 대화 상대방의 말소리를 듣기 위해 주변 소음을 없애는 기능(노이즈 캔슬링)에 치중해왔다. 그런데 이런 추세를 거스르는 데 도전장을 내민 기업이 있다. 글로벌 보청기 기업 WSA(WS Audiology)가 연내 한국에서 선보일 '시그니아 맥스(Signia MaX)'는 주변 소음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들어야 할 소재'로 남겨둔다.
이런 용감한 도전엔 WSA 내에서도 '보청기 장인'으로 평가받는 마르텐 바르멘틀로(Maarten Barmentlo) 최고마케팅책임자 겸 OTC 총괄 사장, 제임스 벤스턴(James Benston)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의 용감한 결단이 깔려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싱가포르 타이셍 스트리트에 위치한 WSA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에서 이들을 만나, 시그니아 맥스 개발 배경과 청사진을 들었다.
마르텐 바르멘틀로(이하, 바르멘틀로)="기존의 보청기 업계에선 소음을 '지워야 할 시끄러운 소리'로 여겨왔다. 사람의 말소리만 잘 골라내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과 역행하듯 이번 신제품 '시그니아 맥스'는 소음을 '제거'하는 게 아닌, '제어'할 대상으로 본다. 제품 속 인공지능(AI)이 소음 환경을 적당히 남겨두는데, 이게 모순되게도 말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효과를 낸다. 한 마디로 적당한 소음환경에서 선명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번 신제품의 철학이 '리브 노이지(Live Noisy)'인 것도 소음이 우리가 삶을 경험하고 삶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실제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제임스 벤스턴(이하, 벤스턴)="AI를 활용해 모든 소음을 제거하는 기능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청환자는 평생 무향실에서 살아가는 셈이 된다. 이들에게도 소음은 환경의 일부다. 밴드음악을 예로 들면 청취자가 보컬의 목소리만 듣는 게 아닌, 악기 연주소리를 배경으로 들으면서 보컬의 노래도 선명하게 듣는 식이 돼야 한다. 보청기 업계에서 저마다 소음을 지우기 위해 AI를 사용하지만, 우리는 소음을 적당히 활용하는 '음향인공지능(Acoustic Intelligence)' 시스템을 자체 개발·도입했다. 그 덕분에 '시그니아 맥스' 착용자의 97%가 주요 경쟁사(타사) 제품을 사용할 때보다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그룹 대화를 더 잘 들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바르멘틀로="우리는 여러 소음이 뒤섞인 일상 환경을 그대로 담은 음향 샘플 4000만 개를 AI에 학습하게 했다. 이 AI의 특화 심층신경망(DNN, Deep Neural Network)은 총 4개로, DNN 4종이 각각 △음성 분석 △소음 제어 △본인 음성 처리 △환경 적응 기능 등 역할을 수행해낸다. 이를 통해 균형 잡힌 '소음 감쇄' 기능을 제공한다. 주변 환경이 실시간 바뀌어도 DNN이 1초당 최대 8억 개의 파라미터(인공지능 신경망 매개변수)를 최적화하는 덕분에 보청기 착용자는 변화하는 환경에 실시간 적당한 소음과 함께 대화할 수 있다."
벤스턴="전 세계 약 17억5000만명이 난청을 겪지만, 이들 중 보청기 착용자는 20%에 불과하다. 보청기 착용을 기피하는 이유로는 고가의 비용, 착용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 노화 이미지 등 다양한데, 주목할 또 다른 원인이 '일반인 청력과의 이질감'이다. 이번 신제품은 소음 감소에만 집중해 착용자를 환경에서 고립시키는 기존 AI 보청기와 달리 소음과 목소리를 균형 있게 처리해 환경음을 보존하고 음성 명료성을 향상했다. 한국에선 노인성 난청 환자의 보청기 착용률이 13.9%(2015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다. 이번 신제품(지난 8월 미국·유럽 출시)이 한국에선 의료기기 승인 절차를 밟으면 11월 중순 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반인 청력과의 이질감을 줄인 이번 신제품을 한국 난청 환자들이 인생 첫 보청기로 선택한다면 보청기 착용률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