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도 '점' 아닌 '선'으로…커프리스 경쟁, 허가 다음은 임상

정기종 기자
2026.10.07 10:28

전 세계 고혈압 환자 14억명…혈압 조절되는 환자는 23% 수준
美 해피헬스 FDA 허가·韓 스카이랩스 英 검증 추진…장시간 측정 신뢰성 관건

커프형 혈압계와 반지형 커프리스 기기를 통한 혈압 모니터링 개념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 /자료=오픈AI 챗GPT

팔에 압박대를 감지 않고 혈압을 측정하는 '커프리스'(비가압식) 기술 경쟁이 의료현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반지 등 착용형 기기가 국가별 규제 문턱을 넘는 가운데 하루 동안의 혈압 변화를 진료에 활용하기 위한 임상 검증도 진행 중이다. 경쟁의 중심이 측정 편의성에서 의료진이 진단·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신뢰성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디지털헬스 기업 해피헬스는 지난달 혈압 측정 시스템 '해피헬스 혈압 모니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510(k) 허가를 받았다. 스마트링(반지)에서 수집한 신호를 분석해 혈압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기존 커프형 혈압계의 측정값을 입력하는 보정 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다만 이번 허가는 22~50세의 특정 시점 혈압 측정에 대한 것으로, 하루 동안의 혈압 변화를 진료에 활용하려면 별도의 성능 검증이 필요하다.

새로운 혈압 측정 기술에 대한 의료적 수요는 크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30~79세 고혈압 환자는 약 14억명으로 해당 연령 인구의 33%다.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환자는 44%, 혈압이 조절되는 환자는 23%에 그쳤다. 고혈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환자도 약 6억명에 달했다.

고혈압은 뚜렷한 증상 없이 진행되면서 심근경색과 뇌졸중, 심부전, 만성콩팥병 등의 위험을 높인다. 관리의 출발점은 정확한 측정이다. 치료를 시작한 뒤에도 혈압이 목표 수준으로 유지되는지,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높아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혈압은 활동과 수면, 스트레스, 약물 복용 등에 따라 달라진다. 병원에서만 높게 나타나는 백의고혈압이나 진료실에서는 정상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높은 가면고혈압은 병원에서 한두 차례 잰 수치만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수면 중 혈압이 높은 야간고혈압도 진료실 측정으로는 놓칠 수 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24시간 활동혈압측정(ABPM)이다. 환자가 측정기를 착용하고 생활하며 주간과 야간의 혈압을 기록한다. 기존 커프형 기기는 일정 간격으로 팔을 압박해 혈압을 측정한다. 커프리스 기기는 압박 없이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장시간 측정의 편의성을 높이려 한다.

이해영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한 순간의 스팟(특정 시점에 측정한) 혈압은 당시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지만 환자의 하루 혈압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며 "주간혈압과 야간혈압, 아침혈압, 혈압 변동성 등 하루 동안의 혈압 흐름을 함께 봐야 심뇌혈관질환 위험과 예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당뇨병에서 연속혈당측정기(CGM)가 활용되는 것과 비슷한 접근이다. 특정 시점에 측정한 혈당만으로는 식후 상승이나 야간 저혈당을 놓칠 수 있다. 시간에 따른 변화가 기록되면 한 번의 검사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흐름을 볼 수 있다. 커프리스 혈압계 역시 혈압을 하나의 '점'에서 하루 동안 이어지는 '선'으로 보여주는 기술을 지향한다.

관건은 측정 횟수보다 정확도다. 혈압은 자세와 움직임, 말초혈류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장시간 착용할 수 있더라도 실제 생활과 수면 중 확보한 값이 신뢰할 만한지 확인해야 한다. 현재 고혈압 진단 기준과 치료 목표도 대부분 기존 커프 측정법으로 축적한 임상 근거를 토대로 정해져 있다.

이 교수는 "커프리스 혈압기기가 FDA 허가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기술 발전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라며 "다만 새로운 방식이 실제 진료에 자리 잡으려면 충분한 임상 검증을 거쳐 의료진이 측정값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인 스카이랩스는 영국·아일랜드고혈압학회(BIHS)의 공식 검증을 목표로 병·의원용 반지형 '카트' 혈압계의 임상연구에 착수한다. 특정 시점의 정확도에 더해 일상생활 중 24시간 활동혈압 측정 성능을 확인하는 연구다.

피험자가 반지형 혈압계와 기존 커프형 활동혈압측정기를 함께 착용하고 24시간 생활한 뒤 두 기기의 주간·야간·24시간 혈압을 비교한다. 연구 결과가 기준을 충족하면 BIHS의 검증 기기 명단 등재 판단으로 이어진다.

의료현장 도입에는 허가 이후의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다. 허가는 정해진 용도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진료지침은 어떤 환자와 상황에서 기기를 활용할지 의료진에게 기준을 제시한다. 보험 적용은 환자의 검사 비용과 의료기관의 도입 여건에 영향을 준다.

국내에서는 스카이랩스의 '카트 비피 프로'가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24시간 활동혈압검사에 사용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도 올해 개정한 진료지침에 커프리스 혈압계를 임상 혈압 감시 장치로 포함했다. 기기 허가에 이어 보험 적용과 진료지침 반영으로 의료현장 활용 기반을 넓힌 사례다.

스카이랩스는 이번 영국 연구를 연내 마무리한다는 목표다. 확보한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BIHS 검증 기기 등재와 영국 공보험 수가 진입을 추진하고, 다른 유럽 국가의 의료현장 도입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스카이랩스 관계자는 "100년 넘게 이어진 커프 혈압의 시대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CGM이 당뇨병 관리에서 '한 번의 혈당'에서 '하루의 혈당 흐름'으로 시선을 넓혔듯, 충분한 임상 검증을 거친 커프리스 기술이 정착한다면 고혈압 진료도 '한 번의 혈압'에서 '하루의 혈압'을 보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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