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최측근에게 듣는 우크라이나 전쟁 뒷이야기[PADO]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2023.03.04 06:00
[편집자주] 지난 1년간 지속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예상보다 못한 러시아군의 '졸전'입니다. 전쟁은 한 나라의 국운을 결정하는 사안으로 러시아는 러일전쟁 패전 이후 혁명을 겪었고, 1차세계 대전 졸전 이후 공산혁명을 겪었습니다. 무모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철군 이후 페레스트로이카를 걸쳐 소련 해체를 겪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가 어떻게 될지, 전세계적 권력균형 지도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에 아직은 이릅니다만, 큰 변화가 분명 나타날 것입니다. 푸틴의 독단적 통치가 이번 전쟁과 관련해 어떻게 드러났는지 그 몇몇 장면을 2월 23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가 보도했는데, 이를 요약 소개합니다. 이번 전쟁은 6.25 한국전쟁과의 유사성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이웃 국가인 러시아가 군사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잃게 되는 경우 한반도 주변 권력균형도 바뀔 것이라는 점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요합니다.
(예레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 (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열린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년 2월 24일 새벽 1시경,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심란한 전화를 받았다.

몇 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이 넘는 침략 병력을 집결시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침내 침공 명령을 내린 것이다.

라브로프는 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 푸틴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설픈 분위기에서 TV에 중계된 연방 안전보장회의에서 돈바스(러시아와 맞닿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산업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한 두 개 지역을 국가로 인정하는 데 대한 장관들의 견해를 물었지만 누구도 푸틴의 본심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수의 측근과만 상의를 하는 경향이 있는 푸틴이 라브로프와 상의 없이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가 약화되는 경우에도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문제의 전화로 라브로프는 침공 시작 전에 러시아의 침략 계획을 알게 된 극소수의 일원이 됐다. 크렘린의 고위급 인사들은 모두 그날 아침 푸틴이 TV에서 '특수군사작전'을 선언하고 나서야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알게 됐다.

침공 선언 후 얼마지나지 않아 올리가르히(러시아 재벌-편집자주) 수십 명이 바로 전날 통보된 회의 참석을 위해 크렘린에 모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구의 제재가 들어오면 자신들의 제국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들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죠."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의 말이다.

회의를 기다리던 올리가르히 중 하나가 라브로프가 다른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그를 찾아가 왜 푸틴이 침략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라브로프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가 회의에서 만난 크렘린 관계자들은 자기보다 아는 게 더 없었다.

충격을 받은 올리가르히는 어떻게 푸틴이 그토록 거대한 침략 전쟁을 극소수의 인사와 계획할 수 있느냐고 라브로프에게 물었다. 크렘린의 고위급 인사, 러시아의 경제 부문 관료, 러시아의 재계 엘리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침공이 가능하리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에겐 세 명의 고문이 있어요." 그 올리가르히가 전한 라브로프의 대답이다.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예카테리나 대제입니다."

멋드러진 전격전으로 러시아군이 유혈 사태를 최소화하면서 며칠 내로 키이우를 점령한다는 게 푸틴의 침공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역사에 손꼽힐만한 규모의 수렁이 됐다. 1년이 지난 오늘날, 푸틴의 침략 전쟁으로 러시아군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미국과 유럽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던 전차, 포, 크루즈미사일은 대부분 소모됐다. 또한 러시아는 세계 금융시장과 서방의 공급망에서 격리된 상태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전쟁으로 푸틴이 자신이 모호하게 밝힌 목표인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와 '탈나치화'를 조금이라도 달성한 것도 아니다. 러시아는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의 영토 17%를 통제하고 있지만 전쟁 초반에 점령했던 지역의 절반 가량에서 퇴각했다. 러시아가 유일하게 통제하고 있던 주도(州都)급 도시 헤르손의 경우, 푸틴이 합병을 선언한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굴욕적인 패배와 함께 군대를 퇴각시켜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무런 기약 없이 질질 끄는 가운데 푸틴은 아직까지 물러설 뜻을 비친 적이 없다.

지난 2월 21일 시정연설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라의 존망이 걸린 것"이며 서방이 그로 하여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입니다. 우린 이를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침략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명백해진 와중에도 푸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그를 아는 이들은 말한다.

"수십만 명이 죽을 거라는 건 당초 계획에 전혀 없었어요. 끔찍할 정도로 엇나갔습니다." 러시아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의 계획이 엉망이 되자 푸틴은 전쟁을 계속 수행할 새로운 근거를 찾으면서 어쩔 수 없이 침략을 개시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다.

"푸틴은 측근에게 이렇게 말해요. '우린 전혀 준비되지 않았더군. 군대도 엉망이고 산업도 엉망이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알게 되서 다행이지. 나토가 쳐들어왔을 때 알게 된 것보다야.'" 전직 고위 관계자가 덧붙인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의 오랜 측근 여섯 명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련된 인물,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를 통해 푸틴이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후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더 밀어부치게 됐는지를 살펴봤다. 민감한 사안이라 모두 익명을 전제로 답했다.

푸틴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 더욱 고립됐다고 한다. "스탈린은 악당이었지만 좋은 관리자였죠. 누구도 스탈린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푸틴에겐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푸틴을 아는 한 사람의 말이다.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소수의 사람만 신뢰하게 됩니다."

'세계사에 유례 없는 독특한 전쟁'

그를 아는 사람들에 따르면 푸틴은 실력보다는 충성심을 중시하며 비밀에 대한 집착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 또한 부하들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관료주의적 문화에 젖어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지속되는 동시에 푸틴이 엘리트에게 충성심을 요구하면서 참모들이 더더욱 그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주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게 푸틴을 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푸틴)의 정신은 멀쩡해요. 이성적입니다. 미치거나 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누구도 모든 일에 대한 전문가가 될 순 없는 일이잖아요. 참모들이 정직하게 말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는 게 문제죠." 오랫동안 푸틴의 측근이었던 인사의 말이다. "관리 체계에 큰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그가 갖고 있는 지식에도 구멍이 크게 나는 거고 그가 접하는 정보의 수준도 떨어지는 겁니다."

푸틴 주변의 엘리트들에겐 거짓말도 일종의 생존 전술이다. 푸틴 행정부와 경제부처 소속 인물 대부분이 자기 친구들에게 자신은 전쟁을 반대하지만 너무 무력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정말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전쟁이죠. 모든 엘리트가 반대하는 전쟁이니까요." 한 전직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전직 기후 특별대사 아나톨리 추바이스를 비롯한 소수의 인사들이 조용히 사임했다. 현재 대형 공기업의 대표로 있는 전직 고위 관계자는 (그와 가까운 인사 둘에 따르면) 심지어 현직이던 시절에 이스라엘 여권을 신청하고 러시아를 떠날 준비를 하기까지 했다 한다.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군 파견을 논의하는 국가안보회의 긴급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AFP=뉴스1

전쟁이 계속 산발적으로 맥없이 흘러감에 따라 푸틴에게도 러시아가 얼마나 큰 판단 착오를 했는지 그 실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러자 푸틴이 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하게 됐다고 한다. 현 러시아 군부에 비판적인 극렬민족주의자 블로거들이 작년 여름 이래 푸틴과 최소 두 차례의 비공개 만남을 가졌다. 이들 중 몇몇은 작년 9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의 합병 행사에 귀빈으로 초대되기도 했다.

푸틴은 자신의 비공식 채널로 습득한 정보를 갖고 공개 석상에서 고위 관계자를 질책하기도 했다. 데니스 만투로프 부총리가 지난달 푸틴에게 러시아 정부가 자국 항공기업체와 신규 항공기 생산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항공산업은 서방의 제재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져 타격을 가장 크게 입은 부문이다. 푸틴은 이렇게 답했다. "계약이 된 게 없는 걸 아는데 무슨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업체 대표들이 제게 말했어요. 계약이 언제 완료됩니까? 업체 대표들은 계약을 한 게 없다고 말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부총리는 제게 계약이 다 돼 있다고 하는군요."

푸틴은 정말로 핵을 사용할까

지난 2월 21일 시정연설에서 푸틴은 "우리 앞의 숙제를 하나씩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러시아의 전쟁은 승리로 끝날 때까지 계속되리라고 역설했다.

이 발언은 적대적인 서방의 위협에 대한 푸틴의 인식이 스스로를 잠식하면서 작금의 전쟁이 푸틴에겐 자신의 실존과 직결될 정도로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자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분노를 미국에 쏟아부으며 미국이 러시아를 "파괴"하려하며 "국가반역자"들을 동원해 러시아를 산산조각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날 연설에는 작년 가을 이후 처음으로 핵전쟁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그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핵으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로 인해 나토의 핵 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는 만일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재래식 무기로 보복하겠다는 공동 서한을 러시아에 전달했다고 전직 미국, 러시아 관계자들은 말했다.

크렘린과 가까운 인사 둘에 따르면 푸틴은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핵을 사용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며 국지적인 핵공격조차도 러시아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푸틴이 발사 버튼을 누를 이유가 없어요. 우크라이나를 핵으로 때려서 얻을 게 뭐겠습니까? 자포리자(푸틴이 러시아 영토로 선언한 주의 주도로 현재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상태다)에 전술핵을 떨어뜨린다고 해봐요." 전직 러시아 관계자의 말이다. "모든 게 방사능으로 오염돼서 안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거기가 러시아 영토라면서요. 그러니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푸틴은 그 대신 러시아가 뉴스타트 협정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뉴스타트 협정은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감축을 위해 만든 마지막 남은 군축 협정이다. 협정 참여 중단 선언은 전쟁 발발 이래 푸틴이 긴장 증대를 위해 취한 조치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이다. 옌스 스톨텐버그 나토 사무총장은 "모든 군비 통제 체제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어쨌든 푸틴은 이번에는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푸틴이 러시아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서방 관계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가 완전히 패배하는 것 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전쟁이 어떻게 되길 원하는지? 푸틴이 살아남아 시간을 벌게 되는 상황이 되길 바라나요?" 유럽연합의 한 외무장관의 말이다. "그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휴지기와 같은 겁니다."

푸틴을 아는 이들은 그가 지금의 대대적인 혼란을 돌파할 수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개전 초기 전반적으로 상황이 정상적이던 시기에 크렘린은 러시아 국민 대부분이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푸틴은 사회 전체가 전쟁을 두고 단결해야 한다며 동원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바로 승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푸틴 스스로도 알고 있어요.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따를 겁니다." 전직 미국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지금 70세죠. 그리고 이를 위한 자원, 석유와 천연가스도 있다고 생각하지요. 푸틴은 표트르 대제처럼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한 것으로 기억될 겁니다."


이 글은 국제시사·문예 버티컬 PADO의 '푸틴의 실책으로 시작되고 확대된 우크라 전쟁'을 요약한 것입니다.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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