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5월 5일자 포린어페어스 기사(다트머스대의 스티븐 G. 브룩스 교수와 윌리엄 C. 월포스 교수의 공동기고문)에 대한 지상토론을 정리한 것입니다. PADO는 '다극 체제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완역해 소개했습니다.
토론참여자: 조슈아 쉬프린슨(매릴랜드대 교수), 앤-마리 슬로터(프린스턴대 교수, 전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빌라하리 카우시칸(전 싱가포르 주UN대표), 로버트 코헤인(프린스턴대 명예교수), 스티븐 브룩스(다트머스대 교수), 윌리엄 월포스(다트머스대 교수)
'다극 체제의 신화'에서 스티븐 브룩스와 윌리엄 월포스는 미국이 강대국 서열에서 자유낙하 중에 있다는 생각에 도전한다. 그들이 보기에 미국은 "강대국 위계의 최정상에서 중국보다 훨씬 높은 곳에, 다른 나라들에게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다." 그들은 세계가 "현재도 양극체제나 다극체제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들이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 배분이 일극적이라는 그들의 기본적인 주장은 틀렸다. 사실 필자들이 권력 배분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택했던 지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 일극체제는 과거의 산물이다.
브룩스와 월스포스의 주장은 세 가지 기본 가정에 근거한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힘의 배분, 즉 한 나라의 경제적, 군사적 능력을 보면 현재 미국과 중국 두 나라만이 강대국이라고 불릴 만하다. 둘째, 미국의 기술적 우위와 중국이 이를 따라잡기가 어려운 상황 때문에 중국은 미국과 같은 급의 경쟁상대가 못 된다. 셋째, 현재의 국제체제에는 미국의 행동 자유를 견제할 수 있는 대항 동맹도 없고 단독 무력을 갖춰놓은 나라도 없다. 양극이나 다극체제에서는 극(極)들이 서로 견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데, 미국의 행동을 실제로 견제하는 메커니즘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일극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하나 하나가 의심스럽다. 첫째, 1등 국가와 어느 정도 비슷한 경제력, 군사력을 가져야만 하나의 극으로 계산해줄 수 있다는 주장은 매우 이상하다. 역사 속에서 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강대국은 꼭 양적으로 1등 국가와 비슷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 국가는 (비슷한 양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충분한 경제력, 군사력과 외교적 역량 및 정치적 영민함으로 갖고 평화시에는 다른 강대국들의 계산에 영향을 미치고 전시에는 다른 강대국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정도면 하나의 극으로 부를 수 있었다. 이렇게 극을 넓게 정의해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일본제국, 소련이 모두 국제체제에서 하나의 "극"으로 취급되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들 국가는 각 시대의 최강 국가보다 상당히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평화의 방정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충분한 힘을 가졌던 것이다.
국가들의 힘을 경제, 군사, 기술, 외교 등 전반적으로 비교평가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하나의 극으로 인정하는데, 극이라는 것은 결국 핵심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 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국가 역량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반적인 경제력이나 군사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분석가들은 국력을 판단하는데 그것만을 전부로 여기진 않는다. 오늘날엔 경제적 다양성(경제가 너무 특화되어 있는 것은 취약성이다),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 핵무기 보유 여부가 국력 평가에 특히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인도는 큰 경제규모, 유리한 지리적 위치, 강력한 핵무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국력 순위는 높아진다. 일본 역시 핵무장이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요소에서 인도와 마찬가지의 유리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랭킹이 높아진다. 중국은 불리한 지리적 위치를 놀라울 정도의 재래식 군사력과 커지고 있는 핵무장이 보완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아마도 훨씬 더) 높은 랭킹을 받게 된다.
중국의 기술적 낙후성이 브룩스와 월스포스가 주장하는 것만큼 강대국 지위를 얻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가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차치하더라도 강대국이 되는데 꼭 기술선도국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소련은 1914년의 기준에서도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지만, 이들 국가는 유럽의 다극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였다. 영국은 독일과 달리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제2차 산업혁명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이 시기에 여전히 하나의 극이었음은 분명하다. 소련은 한 번도 기술적으로 미국 가까이 가본 적이 없었지만, 냉전시기 내내 하나의 극으로서 미국의 경쟁상대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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