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외교는 안정성과 일관성에 의존한다. 하지만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으로 재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는 그런 관례를 파괴하는 인물이다. "트럼프가 기존 정치인과 다른 점은 협상 대상이 그의 후속 행보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커스터마이즈드 웰스(GCW) 공동 설립자 데이비드 비저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를 통해 "불확실성은 전통적인 정책 지도자들에 비해 협상에서 트럼프를 크게 유리하게 만든다"면서도 "관세를 협상 도구로 사용하는 접근 방식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비저는 스탠포드대 경제학 박사로 월가 리먼 브라더스에 몸 담았던 자본시장 전문가로 백악관 대통령 경제금융 자문역을 거친 인물이다.
그는 "관세를 협상 도구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예산 수입원으로 의존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관세가 일상화돼 변화 여지가 없어지면 상대방은 다른 대응책을 찾을 거란 의미다. 협상력을 위해 관세가 고정되는 건 좋지 않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쪽에서는 한꺼번에 관세율을 올리기보다는 조금씩 올리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비저는 "한 국가가 장기적인 자유무역을 추구한다고 해도 다른 국가들이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무역은 불안정하고 최적화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새 미국 정부의 관세 주장에 "게임이론적 요소가 있다"고 짚었다. 실제 트럼프는 취임에 앞서 동맹국인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로 관세 폭탄을 위협하며 이미 게임을 시작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사임을 발표했고,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유입과 마약 펜타닐 문제에 신경을 쓰며 미국과 관계 개선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를 앞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 위협을 한다. 회원국 국방비가 GDP의 5%를 넘지 않으면 동맹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비저는 "우리는 매우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권위주의 세력과 싸우고 있으며,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의 중요한 요소는 경제적 힘을 통한 것"이라며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는 이제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고, 국가 부채를 지속 가능한 경로로 이끌려면 어려운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체 예산과 정책 입안자들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는 지출 수준을 승인하는 인센티브를 면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암호화폐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비저는 그러나 "국가 비트코인 준비금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 아이디어는 지속 불가능한 국가 부채라는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세계 혁신의 중심지인 미국 정부가 혁신을 억제하는 (비트코인 같은) 승자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며 "왜냐하면 비트코인 비축해 그 가격을 지원하는 건 공공의 이익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실책을 저질러 트럼프가 재선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비저는 "트럼프 첫 임기 때 재정적자가 악화된 건 사실이지만 경제가 팬데믹에서 회복되고 있던 시기에 바이든 행정부가 더 큰 재정 투입을 실시했다"며 "과거 민주당 행정부에서 근무한 학자들마저 그 재정 투입이 과도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덧붙였다.
비저는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이외의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고 상대방이 정권을 잡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 대선 결과도 여러 변수가 작용한 것이지만 물가 급등은 그 중 강력한 요인이었다"고 강조했다.
비저는 물가 외에 20년 이상 쌓인 미중 무역 불균형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1년 미국은 중국과 무역 관계를 정상화했고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지만 이후 저가 상품 공급으로 특정 지역은 고용과 생계에 타격을 입었다"며 "이른바 러스트벨트 주에 무역부담이 집중되면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비저는 "무역 협정에 대한 정책 계산에는 협정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도 포함해야 하며, 경제가 새로운 무역 균형에 적응할 수 있는 속도도 고려해야 한다"며 "실직 근로자의 재교육과 재배치를 돕는 효과적인 노동 정책의 실패가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예산 낭비를 억제하고 공공 부문의 구조 개혁을 준비하기 위해 성공한 기업가이자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성부(DOGE)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비저는 "국가 안보 문제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미국 연방정부 지출 가운데 중요한 구성 요소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며 "정책의 초점은 규제의 과도한 범위를 살펴보고 그것이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없애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을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공언하고 대규모 추방을 약속했다. 비저는 "미국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이민자들을 문화적으로 동화시키는 데 탁월한 성과를 거뒀지만 무차별적 방식으로 분별없이 입국을 제한하는 건 실수"라며 "이민은 합리적인 정책으로 통제해야 하지만 무역과 마찬가지로 조정 속도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주거비 급등과 소득격차 문제를 겪으며 사회 구조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비저는 "이민의 양과 속도를 규제할 때 정책 입안자들이 이상적으로 유치하고자 하는 잠재적 이민자의 특성을 정의하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제안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미국 대학 졸업생에 대한 H1-b 비자와 미국 대학 졸업자에 대한 영주권 확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최근 금리인하 전망치를 낮추고 인플레이션이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빠르게 완화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비저는 "이 시점에서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시장에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며 "민간 부문이 물가 안정에 대한 연준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장기 계획에 빠르게 반영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는 물가상승을 지속시키는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연준은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행정부가 지도부를 임명하고 의회가 이를 확인하기에 통화정책은 영향 받을 수 있다"며 "정치적 꼬리가 통화 정책의 개를 흔들지 않는 한(wag the dog), 의견 공유는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