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이 만졌어요" 가난한 아이 골라 '나쁜 손'…은폐 급급[뉴스속오늘]

윤혜주 기자
2025.08.23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3년 8월 23일 아동 성추행범으로 수감 중이던 존 지오건 전 신부가 교도소에서 피살당했다.

존 지오건 전 신부는 1991년 엉덩이를 만지는 등 수영장에서 10세 소년을 강제 성추행한 혐의로 2002년 2월 9~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이 사건은 지오건이 휘말린 100여개가 넘는 사건 중 단 하나에 불과했다. 지오건은 신부 생활을 하는 30년 동안 아동 130여명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62년 사제 생활을 시작한 지오건은 보스턴 대교구에서 사제로 재직하며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오건은 한부모 가정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소년들을 범죄 대상으로 삼았다. 학교 생활이나 친구 관계에서 소외되거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소년들이 범죄 대상이 되기도 했다. 취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신뢰관계를 쌓은 뒤 종교 활동을 빙자해 범행을 저질렀던 것.

한 희생자는 지오건 신부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 차로 집에 태워다줬는데 이때 자신을 괴롭혔다고 털어놨다. 다른 희생자들은 지오건이 취침 시간에 방에 들어와 이불을 덮어주며 속삭이듯 기도하면서 괴롭혔다고 밝혔다.

지오건이 성직 생활을 해온 보스턴 대교구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핵심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오건의 아동 성추행 문제를 알고도 은폐에 급급해 각계의 비난을 샀다. 지오건에게 경고 조치를 내리면서도 지오건을 다른 교구로 전출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고 한 것이다.

여론은 악화됐고 지오건은 버너드 로 추기경의 요구로 결국 1998년 사제복을 벗었다. 성직 박탈 직전까지 어린이를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성 도착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기도 했다. 추기경은 지오건 성추문 관련 소송이 제기된 지 11개월만에 보스턴 관구 대주교직에서 물러났다.

지오건의 범행은 미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2001년 보스턴 글로브의 새로운 편집국장으로 부임한 마티 배런이 스포트라이트 팀에게 오랫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에 대한 취재를 지시했다. 당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강했던 때라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 팀은 끈질긴 취재와 자료 조사를 통해 지오건 뿐만 아니라 여러 가톨릭 사제들이 오랫동안 아동을 성추행해왔고, 교회는 가해 신부들을 다른 교구로 전출시키고 피해자들과 비밀 합의를 하는 등 사제들의 범죄를 은폐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기사가 나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이 일어났다. 보스턴 지역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 국가에서도 성직자들의 아동 성폭력과 교회의 은폐 사례가 연이어 폭로된 것이다. 2016년 이들의 취재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개봉되며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2019년 교황청은 '교회 내 아동 보호'를 위한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 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190여 명의 참가자들은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각국의 방안을 공유했으며 참회예식을 통해 지금까지 교회가 했던 잘못과 성학대를 막지 못한 사실을 반성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성직자를 '사탄의 도구'라고 비난하며 미성년자 성학대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했다.

이러한 성 학대 스캔들 사태를 촉발한 당사자인 지오건은 결국 68세의 나이로 살해당했다. 지오건을 살해한 건 같은 교도소에 복역 중인 조셉 드루스로, 몇 주 동안 살해 계획을 세운 뒤 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드루스는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혐오증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오건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뒤 피해자 측 변호사는"대다수 피해자들은 지오건이 살아서 죗값을 치르고, 그의 아동 성추행 의혹에 관한 진상이 더 밝혀지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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