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캐나다인 댄 왕(Dan Wang)이 쓴 '브레이크넥: 미래를 설계하려는 중국의 탐구'(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가 최근 미국에서 화제다.
특히 미중 기술 경쟁에서 수세에 몰린 듯했던 중국이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미국에서는 중국의 기술력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다. 댄 왕은 중국경제 분석업체인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에서 일하면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중국 기술업계를 취재해 왔다.
브레이크넥은 변호사의 나라가 된 미국이 엔지니어의 나라인 중국을 이기기 힘들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댄 왕은 6년간에 걸친 중국 생활을 끝내고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리서치 펠로우로서 중국을 연구하고 있다.
댄 왕은 10월 초 후버연구소가 진행하는 '굿 펠로우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육군 중장 출신인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과 미중 기술 경쟁을 토론했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다. 특히 니얼 퍼거슨 교수가 던진 통찰력 있는 질문이 돋보였다.
브레이크넥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고 '굿 펠로우스'의 토론 내용도 들여다보자.
댄 왕이 쓴 브레이크넥의 핵심 주장은 중국이 무언가를 건설하는 데 탁월한 엔지니어링 국가로 운영되는 반면, 미국은 무언가를 막는 걸 선호하는 변호사 국가로 변했다는 것이다.
중국 국가 주석 역시 장쩌민(1993~2003), 후진타오(2003~2013), 시진핑(2013~ )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장쩌민은 상하이교통대 전기과, 후진타오는 칭화대 수리공정학과, 시진핑은 칭화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다만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으로 칭화대에 추천입학해, 정통 이공계로 보긴 어렵다.
지난 8월16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T)의 브레이크넥 서평기사에 따르면 댄 왕은 미국은 법조 귀족이 결과보다 절차를 우선시하며 체계적으로 부유층을 편애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1984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로스쿨을 졸업했다.
미국과 중국의 차이는 양국이 어떻게 고속철을 건설하는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엔젤레스를 연결하는 연장 800마일(1280㎞)의 캘리포니아 고속철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이 무렵 중국도 비슷한 거리인 베이징-상하이간 고속철 건설을 시작했다. 3년 뒤 베이징-상하이 고속철은 360억달러의 비용에 완공됐으며 10년간 14억명에 달하는 승객을 수송했다.
반면, 캘리포니아 고속철의 첫 구간은 2030년~2033년 사이에 개통될 예정으로 전체 예상 비용은 1280억달러에 달한다.
재밌는 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중 양국이 7살 때 중국에서 캐나다로 이민가서 중국과 미국에서 각 6년씩을 보낸 댄 왕에게는 쌍둥이처럼 닮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념적인 차이는 차치하고 두 나라 모두 낙관적이고 실용적이며 종종 저속한 물질주의를 드러낼 뿐 아니라, 자신들의 국가가 특별한 운명을 지닌 독보적인 강대국이라 믿으며 작은 나라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여긴다. 이 대목은 트럼프 취임 이후에 더 맞는 말이 된 것 같다.
지난 10월1일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굿 펠로우스'에서 진행된 대담에서도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 많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쟁쟁한 인물들이 MZ세대인 댄 왕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니얼 퍼거슨은 역사학자 답게 중국 엔지니어와 시진핑 사상에 대해 질문하는 등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는데, 댄 왕은 중국 정치에 관한 질문도 능란하게 대답했다.
이날 사회자는 처음부터 "미중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보다 잘 설계된 국가는 어디인가? 건설하는 쪽인가 아니면 소송하는 쪽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댄 왕은 얼마 전 워싱턴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아셀라(Acela) 열차에 탑승한 얘기를 꺼냈다. 아셀라 열차는 미국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북동간선을 운행하는 고속철도로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약 2시간 45분이 소요된다. 그는 열차가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열차 안에서 본 내용이 뇌리에 남았다고 전했다.
얼마 안 있어 새로운 버전의 아셀라 열차가 도입되는데, 기존 아셀라 열차보다 뉴욕에서 워싱턴 DC까지 11분이 더 걸린다는 내용이다. 댄 왕은 "미국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며 "반면, 중국은 새로운 교량, 고속도로, 고속철도와 원자력발전소 등 온갖 인프라를 건설하는 거대한 건설 열풍에 몰두하고 있다. 누가 미래의 승자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다만, 댄 왕은 앞서가는 나라는 항상 자만에 빠져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며 코로나19 초기 팬데믹 기간 중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공격적인 봉쇄로 코로나 통제에 성공했지만, 곧 부동산업체와 테크 기업 규제를 강화하며 성장률을 깎아먹은 걸 예로 들었다.
댄 왕은 보조금 등 산업정책에 대해서 말하다가, 미국 조지아 주의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쇠사슬을 채워서 굴욕감을 느끼게 한 건 엄청난 실수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기위해 엔지니어를 보낸 동맹국에게 할 행동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사회자는 2028년 미국 대통령 후보가 엔지니어 때문에 중국과의 경쟁에서 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대책 찾기에 나서고 미국 대학이 더 많은 엔지니어 배양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미국 8학년(중3) 10명 중 4명이 수학에서 낙제 수준이라는 점이다. 사회자가 "중국의 수학 교육과 엔지니어 양성에서 배울 점이 있는지?" 묻자, 댄 왕은 중국은 수학과 엔지니어링 교육에는 진심이지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지 않는 단점이 있다고 짚었다.
댄 왕은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를 가진 미국 대통령이나 하원 의원이 좀 더 있었으면 한다며 상원 의원 100명 중 54명이 로스쿨 출신이며 단 한 명만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배경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통령 중 엔지니어 출신도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대통령과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단 두 명뿐이다.
니얼 퍼거슨은 시진핑 후계 문제를 물었다. 아무리 엔지니어가 많아도 풀 수 없는 문제가 독재국가의 후계 문제라는 것이다. 퍼거슨은 시진핑 주석의 임기 연장으로 취약성이 발생했는데, 중국 지도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물었다.
댄 왕은 "후계 문제가 중국의 최대 취약성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독재 시스템에서 후계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방법은 없으며 이는 중국에 엄청난 위험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자신은 중국을 '레닌주의적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라고 칭한다고 말했다.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과 변호사의 나라 미국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알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