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도 '스트라바' 켜고 달렸다…젠지는 '런-케이션'[트민자]

김하늬 기자
2025.10.26 08:31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평양에 거주하는 관광가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미국인 조이(ZEO)가 유튜브에 평양마라톤 참가 영상을 올렸다. /사진=ZEO 유튜브 캡쳐

#올해 봄, 북한에서 열린 평양마라톤에 출전한 사람의 기록이 러닝 애플리케이션 '스트라바(STRAVA)'에 모두 공개로 업로드됐다. 평양에서 수년간 관광가이드를 하는 미국인 '조이(Zoe)'는 GPS가 내장된 스마트워치를 차고 마라톤을 뛰었다. 평양 지도 그림이 공유되자, 스트라바에선 대단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조이는 자신의 마라톤 기록을 영상으로도 만들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지만, 가장 눈길을 끈 건 평양 도심 곳곳의 골목이 그려지는 러닝 기록이었다. 앱 유저 간에 화제가 되자, 스트라바는 북한이 미국의 '특정 제재' 국가라는 이유에서 이 기록을 비공개 처리했다.

과거 스트라바 앱에 올라온 평양 달리기 기록.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이 GPS가 장착된 스마트워치나 스마트 폰을 켜고 앱을 사용하는 사례가 가끔 나왔다고/사진=레딧 커뮤니티

전 세계적인 러닝 열풍의 중심엔 운동 기록 앱 '스트라바'가 있다. 스트라바는 2009년 피트니스 앱으로 세상에 나왔다. 처음엔 운동할 때 나의 심박수, 소모 칼로리, 운동시간 등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자전거, 러닝, 수영, 스키,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에 대한 건강 확인 서비스로 시작한 셈이다.

스트라바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건 소셜미디어(SNS)와의 결합 이후다. 자신의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과 연동해 운동 기록을 실시간 공유하면서 "스트라바 때문에 운동을 하게 된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같은 코스를 뛴 유저끼리 기록을 비교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열풍을 이끌었다. 스트라바는 특정 구간을 지난 모든 사람의 기록을 순위로 나열해 이용자들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러닝뿐만 아니라 자전거 라이딩 코스도 마찬가지다. 앱 내에서 기록 1위인 사람에겐 '이 구역의 왕/여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10위권 사람들에겐 메달 이모티콘도 붙여준다.

젊고 건강한 러닝문화를 표방하는 스트라바의 광고 이미지 컷. 스트라바가 영국의 운동앱 '러나(Runna)'의 인수합병을 알리기 위해 특별 제작한 스틸컷/사진-=스트라바 홈페이지

스트라바의 확장세는 Z세대(GenZ,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중심으로 확산된 러닝 붐과 맞물린다. CNN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트라바 이용자는 전세계 150여개국 1억6000만명에 달한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청년층이 늘어나면서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유료 구독 서비스를 꾸준히 사용하는 충성고객이 스트라바의 큰 장점이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이용자들이 지출한 프리미엄 구독료는 1억8000만 달러(2560억원)를 넘어선다. 프리미엄 요금은 월 11.99달러, 연간 79.99달러인데도 유료 이용자가 적잖다.

팬데믹을 겪은 젠지세대가 무의미한 술자리나 모임대신 '건강한 사교'를 선호해 술이 동반되는 나이트 클럽은 서서히 사라지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러닝앱이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러닝에 심취한 젠지세대가 남자·여자를 찾아 헤메던 데이트랩을 러닝클럽으로 바꾸면서 스트라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스트라바가 공개한 '2024 연간 스포츠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러닝크루 참여율은 전년 대비 59% 증가했으며, 응답자 5명 중 1명은 러닝크루에서 만난 사람과 실제 데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세대에서 술자리보다 운동을 통한 교류를 선호하는 비율은 네 배 높다.

2026년 런던마라톤 신청자는 약 110만 명으로 전년보다 31% 늘었다. 뉴욕마라톤 또한 올해 3월 신청자 수가 22% 늘어나 20만 명을 돌파했다. 영국의 마라톤 대회 운영사 ‘그레이트 런 컴퍼니’는 지난해 참여 인원이 전년보다 39% 늘었다고 밝혔다. 전체 참가자의 절반 가까이가 35세 이하였고, 여성 비율도 46%까지 확대됐다. 이른바 ‘Z세대 러닝붐’이 글로벌 현상으로 확대되면서, 마라톤과 러닝 크루가 새로운 사교 플랫폼으로 확장됐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러닝 인증 게시물과 지역 러닝 모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건강을 중시하는 '영 포티'까지 러닝에 합세했다. 스트라바가 공개한 사용자 데이터 추산치에 따르면 최근 심장 강화 운동 열풍으로 스트라바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달리는 '런케이션'을 에어비앤비와 협업해 선보인 스트라바/사진=스트라바 홈페이지

스트라바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런케이션'(run 달리다+vacation 휴양)이라는 새로운 용어와 프로젝트까지 만들었다. 숙박 공유서비스 앱 에어비앤비와 손잡고 많은 젊은이들이 러닝화 한 켤레만 들고 시골로 여행가 러닝을 할 수 있도록 코스와 숙박을 짜주는 서비스를 출시한 것. 뻔한 운동장 트랙이나 도심 러닝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고 러닝을 만끽하려는 젠지들의 관심이 높다. 에어비앤비의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 러너의 74%가 시골의 런케이션을 계획하거나 고려한다고 답했다.

스트라바는 오클리, 메타(Meta)와 함께 AI(인공지능)를 도입한 스마트 안경 개발도 추진 중이다. 이제 시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안경을 통해 러닝 기록에 풍성한 영상까지 곁들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뿐만 아니라 안경을 쓰고 운동하는 동안 측정되는 평균 페이스나 거리, 상승 고도 등의 성과지표를 동영상에 오버레이해 SNS 연동까지 손쉽게 하겠다는 취지다.

오클리와 협업 스마트 안경 제작에 돌입한다고 밝히면서 AI 장착된 스마트 글라스를 쓰고 스트라바를 구동했을 때 예상되는 모습/사진=스트라바

이런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바탕으로 스트라바는 뉴욕증시 입성까지 노리고 있다. 스트라바는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을 주관사 후보로 초청해 상장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이에 앞서 스트라바는 올해 영국의 러닝 코칭 앱 ‘러너(Runna)’와 사이클링 훈련 플랫폼 ‘더 브레이크어웨이(The Breakaway)’를 잇달아 인수하며 IPO를 위한 사업 확장에 나섰다. 마이클 마틴 스트라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회사는 향후 일정 시점에 기업공개를 추진할 계획이며, 상장은 더 큰 인수합병(M&A)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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