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영방송 BBC의 사장과 보도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을 직접 부추긴 것처럼 방송을 조작했다는 이유로 사퇴했다.
BBC는 9일(현지시간) 팀 데이비 사장과 데보라 터니스 보도국장이 사퇴한다고 밝혔다.
BBC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 사장은 "다른 공공기관들처럼 BBC도 완벽하지는 않다"며 "우리는 항상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BBC 뉴스를 둘러싼 지금의 논쟁이 (사퇴)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은 당연하다"며 "전반적으로 BBC는 좋은 성과를 냈지만 몇 가지 실수도 있었다. 사장이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터니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파노라마(B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를 둘러싼 논란이 BBC에 피해를 주고 있다"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다만 BBC 뉴스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BBC 뉴스가 편향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BBC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해 10월 파노라마를 통해 '트럼프: 두 번째 기회?'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송출했다. 영국 텔레그라프는 지난 3일 내부 고발 문서를 입수했다며 해당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조작해 트럼프 대통령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을 직접 부추긴 것처럼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다큐멘터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겠다. 우리는 같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지옥에서처럼 싸울 것이다"라고 한달음에 연설한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 연설에서 "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라는 발언과 "우리는 같이 싸울 것이다"라는 발언 사이에는 50분 이상 시간 차이가 있었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는 "우리는 지옥에서처럼 싸울 것"이라는 발언이 국회의사당 폭력 점거를 직접 선동하는 것처럼 묘사됐는데 실제 연설에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부정을 주장하며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발언 중 나온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BBC는 최근 송출한 '가자: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두고도 논란을 겪었다. 이는 가자지구의 참상을 보도한 다큐멘터리였는데 외주 제작업체가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 간부의 아들에게 내레이션을 맡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미디어 규제당국 오프콤은 "사실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높은 신뢰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며 제재를 결정했다.
정치권에서는 BBC에 신뢰성 제고를 주문했다. 리사 낸디 영국 문화부 장관은 엑스(X) 게시글에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뉴스와 고품질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라며 "정부는 BBC 이사회를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에드 데이비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는 "민주주의는 사실 검증과 책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사인 BBC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BBC가 새 국면을 맞을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나이젤 패라지 개혁당 대표는 "(데이비 사장, 터니스 국장의 사퇴가) 대대적인 변화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며 "이게 BBC의 마지막 기회다. BBC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