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수교 60년 '풀지 못한 숙제'…韓日 학자들 만나 해법 모색

후쿠오카(일본)=조철희 기자
2025.11.17 08:00

서울대-규슈대-규슈한국연구자포럼 공동주최 심포지엄 "실질적 협력 방안 필요, 새로운 틀 기획할 때"

(서울=뉴스1) =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 30일 서울 남동쪽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자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APEC 2025 KOREA & 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2025.10.30/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일본을 연구하는 한국의 학자들,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의 학자들이 한데 모여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복 8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인 올해 한일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 중이다. 때마침 한일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했고, 양국 정상은 일단 험난한 국제정세를 고려해 갈등과 경쟁보다 협력으로 외교 방향을 잡았다. 민간 차원에서도 여느 때보다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서로를 연구하는 양국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함께 풀어야 할 한일관계의 숙제들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5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합동학술심포지엄 '해방 80년, 한일국교정상화 60년 한일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선 복잡한 지정학적 환경에 둘러싸인 한국과 일본이 실질적으로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비롯해 양국 간 교류 확대와 인식 개선, 내부 정치 구조 변화에 따른 한일관계 영향,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 등 중요한 이슈들이 논의됐다.

이날 심포지엄은 국내 대표적 일본 연구기관인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를 비롯해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가 한국 측 공동주최 기관으로 참여했고, 1999년 일본 전국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한국연구센터'라는 이름을 내걸며 설립된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와 2020년 출범한 규슈 지역 내 한국 연구 학자 네트워크인 규슈한국연구자포럼이 일본 측 공동주최 기관으로 참여했다. 서울대 박태균·박지환 교수, 규슈대 이즈미 카오루 교수 등이 발했으며 기무라 다카시 후쿠오카여대 교수(규슈한국연구자포럼 부대표),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지난 15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합동학술심포지엄 '해방 80년, 한일국교정상화 60년 한일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 참석한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조철희 기자
"한일, 새 공동선언 하려면 실효성 있는 내용 담아야"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동아시아 안보 지형이 변화해 한국과 일본이 북한 문제를 공동으로 다뤄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지난 60년 동안의 한일관계에 대해 "미국, 중국 등에 휘말려 계속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제3자가 항상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한국과 일본이 함께 주목해야 할 '제3자'로 북한을 꼽으며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북한 변수, 북미 변수를 고민하고 공동의 전략 과제로 삼아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이유로 북한을 외면하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과 자신감을 키우며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미 간 접촉이 재개될 경우 한국과 일본이 또다시 패싱될 위험을 강조하며 "한일 국교정상화 60년을 맞은 지금 양국이 협력의 틀을 새로 짜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질서 변화의 파고를 그대로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이어 한일 간에 새로운 공동선언이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대해 "북한, 미중갈등, 미국의 통상압력 같은 문제들을 내용으로 담아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재명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유화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대해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을 통해 미국에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지금은 북한이 먼저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게 낫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로선 한일관계나 한중관계가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환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장은 한국에서 일본 관광은 물론 일본 대중문화 향유가 크게 늘었지만 일본에 대한 이해나 호감이 그만큼 크게 높아지지는 않고 있는 현상을 진단했다. 애니메이션·영화 등 일본 콘텐츠 소비층이 크게 늘었지만 한일관계가 악화될 경우 일본 콘텐츠 소비가 꺼려진다는 반응이 우세한 현실이다. 콘텐츠 소비가 곧바로 그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로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원피스', '귀멸의 칼날' 등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사례처럼 욱일기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소장은 일본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의 '약한 연결' 개념을 소개하면서 말로 논쟁하며 진실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말 바깥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것, 즉 일상적이고 비정치적인 만남을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것이 한일 간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과거 양국 교사들이 함께 교과서를 만들려고 했던 사례처럼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협력의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성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소장은 "서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관광이나 대중문화 소비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 인식을 꼭 공유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이웃으로서 동료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개인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을 기획하고 그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즈미 카오루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장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처럼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만큼 강한 권력을 가진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가 등장하고 우경화 경향이 함께 나타났던 근래의 일본 정치사를 되짚으며 이런 총리의 개인 뜻에 따라 외교가 좌우되고 한일관계도 크게 뒤틀렸던 점을 지적했다.

(왼쪽부터) 박태균 교수, 박지환 교수, 이즈미 카오루 교수, 류기현 연구원, 야마구치 유카 조교. /사진=조철희 기자
"내각제 일본, '대통령제화'로 인해 한일관계 불안"

이즈미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일본 정치의 '대통령제화'라고 표현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내부적으로는 경제침체, 외부적으로는 북한 핵 개발 등 안보 불안이 닥쳤다. 정치개혁 일환으로 소선거구제가 도입됐으나 정치는 분극화(양극화) 됐다. 그 결과 강한 개인 권력에 기반한 '대통령제적 리더십'이 등장했다. 아베 전 총리 이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그랬다. 그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한일, 중일 관계에 큰 긴장을 초래했다. 고이즈미 정권과 아베 정권 때처럼 개인 권력에 기반한 일본 정부의 외교는 한일관계의 불안정성을 키웠다.

그러나 최근 기시다·이시바 정권을 거치며 대통령제화 경향은 약화됐다. 이즈미 교수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는 소수여당이라는 한계에 과거 같은 강경한 개인 중심 외교를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즈미 교수의 이같은 참신한 분석 관점에 따르면 앞으로 일본 정치의 내부 권력 구조 변화가 한일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류기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BK교육연구단 연수연구원은 1952~1954년 체결된 주일유엔군지위협정(UN SOFA)의 역사와 의미를 공유했다. 이 협정은 한국 안보에 핵심적으로 기능하는 '유엔사 후방기지'의 존립 근거다. 미일 관계의 단순한 산물이 아니라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다국적군을 운용하기 위한 구조적 장치였다.

류 연구원은 "동아시아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다자안보체제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엔군사령부를 축으로 유사한 체제가 존재해 왔다"며 "미국이 한일 양국에 군사 협력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이 구조가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한 요인으로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마구치 유카 규슈대학 한국연구센터 조교는 '재일코리안과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 경계로부터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제하의 발표에서 '자이니치'(재일코리안)의 역사를 돌아봤다. 일본 지역사회에서 재일코리안의 기록과 삶을 보존하려는 시민주도형 박물관·기념관 건립 운동을 소개했다.

재일코리안들은 일본 각 지역에서 산업에 참여하고 재난의 고통을 함께하는 등 일본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 왔고 공생해 왔다. 이들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인 동시에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해온 지역사와 맞물려 있다. 재일코리안은 이제 한국과 일본의 주변부 서사에 머물지 않고 양국 관계사를 다시 질문하게 만들고 있다. 야마구치 조교는 "한일 협력이 확대되면 다문화, 공생, 인권, 평화 등의 보편적 가치 속에서 재일코리안의 역사를 공동으로 기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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