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가격이 23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톤(t)당 1만2000달러(약 1757만원)를 돌파했다. 주요 광산의 생산 차질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국제 기준이 되는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 3개월 선물 가격은 23일 장중 한때 2% 가까이 올라 1만2159.5달러를 찍었다. 구리 가격은 올해에만 35% 넘게 올랐다. 이대로라면 2009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게 된다.
그동안 잠재적 위험으로 거론되던 생산 차질 우려가 수요 증가 전망과 겹치면서 구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2위의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구리 광산은 9월 대규모 산사태로 생산이 지연됐고 앞서 콩고민주공화국과 칠레의 주요 구리 광산에선 홍수와 터널 붕괴 사고가 벌어졌다.
반면 수요 전망은 여전히 견조하다. 인공지능(AI) 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각국이 전력망과 관련 설비 확충에 나서고 있어서다. 구리는 전선과 전력 설비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핵심 원자재다.
미국의 구리 관세 부과 가능성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새 관세가 도입될 수 있단 전망에 미국 내 구매자들이 선제적으로 물량 확보에 나선 탓이다. 캐나다 투자은행 BMO캐피탈마켓의 헬렌 에이머스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미국은 여전히 재고를 쌓아두는 국면에 있다"며 "추가 정책 신호가 나올 때까지 사재기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채굴이 쉬운 자원은 이미 상당 부분 고갈됐다며 수요 증가에 맞출 수 있는 새 공급원을 찾기가 불확실하단 전망을 내놓는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세계 최대 광산업체들의 생산량이 올해 3% 감소할 것이며, 2026년에도 추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당장은 구리 공급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내년에는 수요가 공급을 약 60만t 초과하고 이후 부족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씨티그룹은 달러 약세와 미국 금리 인하가 이어진다면 투자 수요가 겹쳐 구리 가격이 t당 1만5000달러까지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에이머스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구리 재고 중 상당량이 미국 창고에 묶여서 시장에 유통되지 않고 있다"면서 "재고가 시장에 풀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이 미국에 남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