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설선물로 보조배터리 가져왔어요. 마음에 드세요?"
"자 여기 내 손자들이 있단다. 얘들은 나들 돌봐주고 빨래도 해준단다. 전기만 먹는 세탁기보다 훨씬 낫단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TV(CCTV)에서 지난 16일 밤부터 방송된 춘제(음력 설) 특집 갈라쇼 '춘완(春晩)'. '할머니의 최애'란 제목의 콩트 코너에 네 대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이 등장했다. 할머니는 공중제비를 돌며 재롱을 부리는 로봇이 진짜 손자라며 춘제를 맞아 오랜만에 집에 찾아온 '인간 손자'를 타박한다.
매년 춘제 전날 10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춘완의 올해 씬 스틸러도 로봇이었다. 4곳 이상의 중국 토종 로봇 기업이 공식 협력사로 참여한 올해 춘완은 역대 가장 많은 로봇이 무대에 등장한 해로 기록됐다. 규모의 확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춘완이 로봇들이 집단 군무를 선보이며 중국 로봇산업의 도약을 알렸다면 올핸 인간의 일상 생활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차이나 로보틱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춘완의 첫 코너로 편성된 '할머니의 최애'는 이 같은 중국 로봇산업의 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할머니의 손자들로 등장한 샤오부미, N2, E1 등 모델은 2023년 베이징에서 설립돼 로봇 상호작용 시스템을 개발하는 노에틱스(松延動力, 송옌동리)의 제품이었다. 할머니의 음성과 동작에 맞춰 재롱을 부린 손자 로봇들을 연출하기 위해 개발진은 비슷한 키의 어린이들 동작을 로봇에 사전 학습시켰다.
코너 막바지에 등장한 '할머니 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넘어선 '바이오닉 로봇(인간의 피부 질감, 표정, 눈동자 움직임까지 구현한 로봇)'이었다. 극중 할머니 역의 인간 배우를 복제한 듯 빼닮은 이 로봇은 배우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했다. 바이오닉 로봇이 춘완에 등장한 첫 사례다. 개발진은 실제 인간을 방불케 하는 상호작용을 위해 배우 얼굴의 3D 모델링을 통해 피부 질감을 재현했다. 로봇 입 부분에 12개의 구동모터를 장착해 음성과 입모양의 프레임 단위 동기화를 구현했다.
무대에서 로봇들과 대화를 하며 연기를 펼친 할머니는 극 마지막에 "그래도 로봇은 우리 큰 손주를 영원히 대신할 순 없어"라며 '인간 손자'와 포옹했다. 중국 매체 차이롄서는 "가정용 도우미로서 로봇의 정서적 동반 가치와 고령화 사회 응용 가능성을 부각했다"고 평가했다.
춘완을 통해 방영된 마이크로영화(10분 안팎의 TV, 온라인 플랫폼 용 영화) '가장 잊기 힘든 오늘 밤'에 등장한 갤봇(銀河通用,인허통용)의 'G1' 로봇 역시 옷 개기와 깨진 유리잔 청소, 소세지를 나무젓가락에 꿰는 등의 간단 조리를 하며 '로봇의 일상화'를 선보였다.
'가장 잊기 힘든 오늘 밤'은 춘완 무대 뒷편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렸다. 춘완 무대에 서기로 한 마술사가 생방송 직전 혈압 상승으로 갑자기 쓰러지자 그를 대신할 배우를 찾는 좌충우돌 과정에 G1이 등장해 무대 준비를 돕는다. 인간형 상체에 바퀴를 붙여 이동 안정성과 작업 효율을 살린 G1은 리테일, 의료, 물류, 사무 보조 등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실전형 로봇이다.
지난해 춘완을 통해 로봇 집단 군무를 선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한 유니트리(宇樹科技, 위슈커지)는 올해 무대에선 로봇 수십대가 청소년들과 어울려 각종 무술을 선보인 '무봇(武이BOT)' 공연을 펼쳤다. 인간과 거의 같은 움직임의 권법과 검법은 물론 도움닫기 후 측면 공중돌기 등 고난도 동작을 소화한 H1과 G1등 유니트리의 로봇들은 쓰러질듯 말듯 유연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동작을 이어가는 취권까지 보여줬다.
유니트리의 창업자 왕싱싱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경제매체 디이차이징을 통해 "로봇이 고속으로 달리는 가운데 정밀한 대형 전환과 무술 동작을 동시에 구현한 집단 제어 기술은 이번이 첫 공개"라며 "이는 향후 물류와 제조 등 다양한 현장에서 다수의 로봇을 동시에 운용하거나 개별 로봇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기반 기술"이라고 말했다. 2016년 설립해 항저우에 본사를 둔 유니트리는 사족 로봇으로 출발해 휴머노이드까지 확장한 중국의 대표 로봇 기업이다. 군집 운용 기술 필두로 로봇 상용화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