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로 불리는 뱅크시의 정체가 1973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그라피티 예술가 로빈 거닝엄일 가능성이 크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뱅크시는 스텐실 기법의 거리 벽화를 통해 전쟁과 소비주의에 대한 풍자와 비판, 난민에 대한 관심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신비주의적 이미지까지 힘입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동안 뱅크시의 정체로는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거리 예술가 티에리 구에타, 영국 밴드 '매시브 어택'의 프론트맨 로버트 델 나자 등이 거론돼 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의 호렌카 마을에서 발견된 그라피티가 뱅크시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2022년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들 사이에 남겨진 이 작품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남성 2명이 스프레이와 스텐실을 이용해 몇 분 만에 만들었다. 이들과 함께 있던 다른 남성 1명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한쪽 팔은 잃었으며, 다리 양쪽에는 의족을 하고 있었다.
의족을 한 남성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자일스 둘리로,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팔과 다리를 잃었다. 우크라이나 이민 절차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둘리는 델 나자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입국했고, 이후 뱅크시의 벽화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로이터 조사팀은 '데이비드 존스'라는 인물이 이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국경을 넘은 기록을 찾아냈다. 존스의 여권에 적힌 생년월일은 거닝엄과 같았다.
로이터 조사팀은 뱅크시가 2000년 미국 뉴욕에서 옥상 광고판을 훼손한 혐의로 체포됐을 당시 로빈 거닝엄이라는 인물이 이를 자백했다는 사실도 법원과 경찰 수사 기록 등을 통해 확인했다.
거닝엄은 2008년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자신을 뱅크시로 지목하는 보도를 내놓자 이름을 데이비드 존스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뱅크시는 로이터의 자체 조사 결과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뱅크시가 설립한 공식 작품 인증·판매 기관 '페스트 컨트롤 오피스'는 뱅크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뱅크시 측 변호사 마크 스티븐스는 뱅크시가 "집요하고 위협적이며 극단적인 행동의 대상이 되어 왔다"며 신원을 숨기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익명, 혹은 가명으로 활동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이익을 제공한다"며 "창작자가 정치, 종교, 사회 정의와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 보복, 검열 또는 박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권력에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하여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