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배럴당 1달러(약 1500원) 수준의 통행료를 받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행료는 중국 위안화나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받을 계획이다.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해운업계와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이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다"며 "이란은 우호적인 국가의 선박에는 특혜를 주고, 침략자로 간주하는 국가의 선박에는 공격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이란의 보복으로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소식통은 "이란 당국은 국가 등급을 1~5등급으로 분류했다. 이란에 우호적인 국가로 여겨지는 곳의 선박일수록 더 유리한 조건으로 통행료가 정해진다"며 "유조선의 경우 협상 시작 가격은 일반적으로 배럴당 1달러로, (통행료는) 위안화 또는 위안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적재 용량은 통상 200만 배럴인 것을 고려하면 유조선에 200만달러(30억4300만원)의 통행료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타스님통신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로 이란 정부가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20~25%에 달하는 1000억달러(150조원) 이상의 수입을 얻을 것으로 추산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 조건은 한층 구체화했다. 해협 통과를 원하는 선박 운영사들은 먼저 IRGC와 연계된 중개 회사에 연락해 △선박 소유권 △국적 △화물 명세서 △목적지 △선원 명단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데이터 등을 제출해야 한다. 제출된 서류는 IRGC 해군 호르모즈간주 사령부에 전달되고, 이란 측은 해당 선박이 미국·이스라엘 등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국가들과의 연관성이 없는지를 조사한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면 통행료에 대한 협상이 시작된다.
통행료를 낸 선박에는 IRGC의 통항 허가 코드와 항로 지침이 발급된다. 선박들은 통과 협정을 체결한 국가의 국기를 달아야 하고, 호르무즈 해협에 접근하면 초고주파 무선으로 통행 허가 코드를 송출해야 한다. 이후 선박들은 이란 순찰정의 호위를 받으며 해협을 통과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블룸버그에 "통행료 지급 이후에는 이미 '이란의 통행료 부스'라 불리는 특정 해역을 따라 통과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앞세워 자국과의 협력을 요구하거나 관련 선박에 통행료, 세금을 요구하는 등 해협 통제권을 국가 이익 사업 확대를 위한 사실상 '인질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이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는 지난달 30일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지급 등이 담긴 해협 통제 관리 계획안을 승인했다. CNBC는 "이란 의회의 승인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재정적 통제력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안전을 대가로 통행료를 요구하지만, 통행료 지급에도 위험은 여전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영국 랭커스터대의 바질 저먼드 국제안보 전문가는 "이란이 제공하는 '안전 통과' 체계를 해상 위험 완화로 보기는 어렵다"며 "이 체계가 작동하려면 이란은 여전히 해협과 페르시아만에서 상업 선박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때때로 실제 공격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미국, EU(유럽연합), 영국의 제재 대상인 IRGC와 거래하는 것 자체가 제재 위반이나 자금세탁 방지 규정 위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해운 데이터매체 로이드리스트에 따르면 전쟁 이후 해협을 통과한 최소 2척의 선박이 이란 당국에 중국 위안화로 수수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다만 구체적인 금액과 방식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중동 분쟁 관련 대국민 연설에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문제는 중동산 원유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책임져야 한다며 미국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