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말라카 해협에서 이란 호르무즈 해협처럼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철회하면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말레이시아 반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최단거리로 잇기에 세계적으로 중요한 수송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란이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을 막고 통행료를 받을 태세를 보이면서 말라카해협 등 또다른 해상 길목을 틀어쥔 나라들이 이른바 '초크포인트'(조임목)를 무기화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 행사에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무역·에너지 항로에 있는데도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논란을 샀다.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서고 통행료를 받는 이란 사례와 자유 통행이 가능한 말라카 해협을 비교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말라카해협 인접국가들이 반발했고 인도네시아도 진화에 나섰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말라카 해협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통행이 유지돼야 한다"며 "싱가포르는 해당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 항해를 제한하거나 비용을 부과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발언 당사자인 푸르바야 장관은 24일 통행료 부과 계획이 없다고 공식화했다. 그는 "진지하게 논의한 것이 아니었다"며 "인도네시아는 국제 항로와 관련한 규칙을 명시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해역에서 모든 국가 선박에 대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한 협약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 협약은 인접 국가의 통행료 부과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수기오노 인도네시아 외교부 장관도 "인도네시아는 항행의 자유를 지지하며 해상 항로가 개방되길 기대한다"며 "통행료를 부과할 입장이 아니고 이는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전세계 무역량 약 40%가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걸로 추산된다. 특히 한중일의 원유 수송이 절대적으로 이 바닷길목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수입하는 원유 80~90%가량이 이곳을 지난다. 해협이 좁고 길어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막을 경우 통제가 가능하다.
만약 이 해협이 막히거나 통행료를 내는 식으로 조건이 바뀌면 주변국에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낳을 수 있다. 항로를 우회해야 하기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비용뿐 아니라 경제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높여 연쇄적인 영향을 준다. 말라카해협을 대표적인 '아시아의 호르무즈 해협'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기로 이 같은 주요 항로가 언제든 무기화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란전쟁은 해상 수송로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줬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요충지가 얼마나 쉽게 무기화되고 그 여파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과 이란의 해상 분쟁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새로운 위험을 야기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아시아 해역에서 이란 연계 유조선을 나포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는데 이 같은 문제가 생길수록 동남아 연안에 위치한 국가들은 해역 감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