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받으면 더 강하게 반격하라. 나보다 약한 자를 찾아 희생양으로 삼아라. 거짓말로 모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라."
1950년대부터 1986년 사망 전까지 미국 법조계를 풍미한 변호사 로이 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생 멘토로 불린다. 로이 콘의 사촌이기도 한 데이비드 마커스는 2021년 USA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내 사촌 로이 콘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혹을 부인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기술을 가르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적었다.
두 사람 관계는 2024년 영화 '어프렌티스' 등 미디어에서도 조명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 마디, 결정 하나가 세계질서에 큰 영향을 주면서 콘 변호사도 관심을 받는다.
1927년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로이 콘은 20세에 컬럼비아 대학 로스쿨을 졸업해 2년 간 뉴욕 남부지방검사 서기로 근무하다 연방검사로 임관했다. 냉전 시대 한복판에서 반공주의에 심취한 로이 콘은 미국 핵 기술을 옛 소련에 넘긴 간첩 혐의로 기소된 로젠버그 부부 사건에 깊이 관여해 사형 판결을 끌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눈여겨본 조셉 매카시 전 상원의원은 26세에 불과한 그를 수석 보좌관으로 삼았다.
매카시즘 몰락으로 매카시 전 의원이 권력을 잃었지만 로이 콘은 이후 뉴욕에서 거물 정치 브로커로 활동했다.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잡아들일 정도로 강력한 국세청의 세금 독촉조차 간단히 무시할 정도로 로이 콘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1950~1960년대 주식 사기, 사법 방해, 위증, 뇌물, 협박 등 여러 혐의로 네 번이나 기소됐으나 세 번 무죄, 한 번은 심리 무효(배심원 의견 불일치나 절차 문제로 재판 무산)를 받아냈다. 마커스는 "로이 콘은 마치 무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마커스는 로이 콘이 사망하기 전 1년 동안 그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2019년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을 비방하고 민주당원이면서 민주당을 매도했으며 동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를 혐오했다"며 "원칙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로이 콘을 처음 만난 건 1973년 10월 디스코덱 '르 클럽'에서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유색인종과 임대차 계약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법무부로부터 고소당한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 변호사들이 혐의를 인정하고 합의하기를 권유한다며 로이 콘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회상한 바에 따르면 이를 듣던 로이 콘은 "(그들에게) 지옥에나 가라고 하고 법정에서 싸우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 콘에게 사건을 맡겼다.
로이 콘은 법무부를 향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수임 두 달 후 뉴욕 힐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의 무책임한 기소에 책임을 묻겠다며 1억 달러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송이 기각되자 유대인 검사가 강압 수사를 했다는 등 주장을 펼쳤다. 영화 '어프렌티스'에서는 로이 콘이 법무부 수뇌부 인사의 약점을 잡아 사건을 뒤집는 것으로 묘사된다. 어쨌든 진흙탕 싸움 끝에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 차별을 했다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채 합의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였다.
로이 콘은 1977년 트럼프 대통령과 첫 번째 부인 이바나의 결혼에도 관여했다. 처음 결혼을 만류했다던 콘은 굳이 해야겠다면 결혼 전 계약서를 써야 한다며 자신이 직접 이바나와 협상해 계약서를 쓰겠다고 했다. 처음엔 트럼프 대통령과 이혼하면 받은 선물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바나가 질색하자 로이 콘은 선물은 그대로 갖고 10만달러 상당의 예금증서를 지급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년 뒤 외도로 이바나와 이혼하는데, 이때 계약 덕분에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 콘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하나였다. 그 정도로 서로 가까운 사이였다. 칼럼니스트 신디 애덤스는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로이 콘이 트럼프 대통령을 "언젠가 뉴욕을 손에 넣을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적이 있다고 적었다.
WP 등에 따르면 로이 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문료를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콘이 '친구에게 돈을 청구할 수는 없다'며 청구서를 보내길 거부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로이 콘은 1986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5주 뒤 사망한다. 이미 에이즈 합병증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임종을 앞둔 상태였다. 2016년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는 정말 똑똑했고 나를 좋아했으며 나를 위해 훌륭하게 일해준 사람"이라며 "정말 강인한 사람,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유착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제프 세션스 당시 법무장관이 자신을 위한 방패막이를 자처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세션스 장관은 해당 사건 수사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2018년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 로이 콘은 어디있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 콘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