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대통령선거에서 극우 성향 정치 신인이 치열한 결선 끝에 좌파 집권여당 후보를 누르고 승기를 거머쥐었다. 당선이 확정될 경우 남미의 우파 물결 이른바 블루타이드가 거세질 전망이다. 단 득표율 격차가 1%도 되지 않아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고 불복 가능성도 있다.
21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신속 개표 자료에 따르면 신생정당 '조국의 수호자' 대통령 후보 아벨라르도 델 라 에스프리에야가 득표율 49.66%를 기록, 집권 여당 '역사적 동맹'의 이반 세페다 카스트로 후보(득표율 48.70%)를 근소한 차로 앞선 걸로 나타났다.
신속 개표는 국민들에게 선거 결과를 신속히 알리기 위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모든 투표지를 수작업으로 검증하는 검표 절차를 거쳐야 선거 결과가 공식 확정된다. 검표 절차가 끝나려면 최소 일주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델 라 에스프리에야 후보는 신속개표 결과를 환영하고 "세페다 후보는 호랑이가 얼마나 사납게 포효하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호랑이'는 자신을 말한다. 그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근거지를 폭격해 마약 문제를 뿌리뽑겠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카르텔과 협상해 자발적 항복을 끌어내겠다는 구스타보 페트로 현 대통령의 입장보다 과격하지만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그는 대선 1차 투표에서 득표율 43.74%를 기록, 세페타 후보(득표율 40.90%)를 누르고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 전 인터뷰에서 "마약 문제는 콜롬비아는 물론 미국, 유럽, 아시아 모두의 안보 문제"라며 미국의 도움을 얻어 치안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친미적이란 비판에는 "나라를 마약 테러리스트, 범죄자들에게 갖다 바친 이들이 누구냐"며 페트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비난했다. 페트로 대통령의 협상 위주 정책은 카르텔 활동과 마약 밀수출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만장자 변호사 출신인 그는 남미 실력자들을 법정에서 변호하며 이름을 알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알렉스 사브 전 베네수엘라 산업부 장관, 20만명을 속여 20억달러(3조원)를 가로챈 콜롬비아 최악의 다단계 사기범 다비드 무르시아 구스만 변호를 맡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변호사 활동의 일환이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통해 좌파 정치인들을 공개 비판하며 우파 세력을 결집했다. 2022년 자신이 설립한 대형 로펌 에스프리에야 법률사무소 대표직을 내려놓고 사업 활동을 하다 2025년 조국의 수호자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나섰다.
그는 콜롬비아·미국 국적을 동시에 가진 이중국적자로 미국 공화당원이기도 하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이념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중국적 논란에 대해서는 "선거당국에서 법적 문제 없다는 결론을 받았다"며 "콜롬비아를 위한 헌신이 나의 첫째 의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그가 이겼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델 라 에스프리에야 후보가 집권할 경우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처럼 카르텔 척결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부켈레 대통령은 2024년 집권 이후 현지 폭력 조직원 8만5000명 이상을 감옥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폭력 조직원들이 재판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세페타 후보 측은 신속 개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투표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곘다고 했다. AP통신은 콜롬비아에서 재검표로 선거 결과가 뒤집힌 경우는 없다고 부연했다.
2025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전후로 남미 국가에서 잇따라 우파 정부가 들어섰다. 2023년엔 남미 트럼프로 불린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다. 2025년 에콰도르에선 중도 우파로 평가받는 사업가 출신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이 좌파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같은 해 말 칠레의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과 온두라스의 나스리 아스푸라 대통령이 보수 후보로서 집권에 성공했다. 올해 2월 코스타리카에서는 신생 우파 주권국민당의 라우라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역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7일 페루 대선에서도 우파인 게이코 후지모리 민중의힘 후보가 0.1%포인트 격차로 1위를 달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개표가 완료되지 않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개표율이 99%를 넘어선 상황이라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후지모리 후보는 페루 독재자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이다. 후지모리 후보는 2011년부터 대선에 도전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이번이 네 번째 대선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