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메모리 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애플이 미국 전쟁부(국방부)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반도체 기업의 메모리칩을 구매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로비에 나섰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26일(현지시간) FT는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메모리칩 구매를 승인받기 위해 백악관과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메모리칩 가격이 급등하자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 CXMT 칩 구매를 추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CXMT는 중국의 대표적인 D램 제조업체다.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제조사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등과 함께 미국 전쟁부의 '중국군사기업 블랙리스트'에 포함돼있다. '중국 군사기업'은 민간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군의 현대화를 돕는다고 미 전쟁부가 판단한 기업들을 말한다. 명단에 포함된다고 해서 거래가 금지되는 건 아니지만 향후 상무부 등의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애플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최근 메모리 가격 급등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범용 D램 공급까지 부족해지면서 메모리 가격이 크게 올랐고, 애플 역시 원가 부담이 급격히 커졌다. 최근 애플은 메모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최근 맥북과 아이패드 가격을 약 20% 인상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애플은 미국 마이크론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부터 D램을 공급받고 있다. 여기에 CXMT를 공급망에 추가하면 메모리 공급처를 다변화해 가격 급등에 대응하고 기존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애플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정부가 승인한다고 해도 미 의회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도 있다. 미 하원 중국특위 위원장인 공화당의 존 물레나르 의원은 FT에 "애플이 중국 군사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라며 "중국 공산당이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도록 돕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역시 2022년 상원의원 시절 애플이 YMTC의 낸드플래시 구매를 검토했을 당시 "불장난을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