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2기 들어 전례 없는 규모의 모금 활동을 통해 자신과 측근이 통제하는 단체나 재단에 자금을 쌓아둔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상당수 자금의 출처와 사용처가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 논란이 커지고 있다.
WSJ이 트럼프 대통령 관련 단체의 재무공시와 로비 자료, 세무 서류, 후원자 인터뷰 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4년 11월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단체에 유입된 기부금과 후원금이 최소 7억8195만달러(약 1조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WSJ은 상당수 단체가 기부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실제 모금 규모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WSJ은 과거 대통령들이 선거 운동이나 취임식, 대통령 도서관 건립 등을 위해 민간 후원을 받았던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목표 추진, 반대 세력 공격, 퇴임 후 정치적 유산 구축 등에 기부금을 활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가장 많은 자금이 집중된 곳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곽 지원 조직인 슈퍼팩(특별정치활동위원회) '마가 주식회사'로 2024년 11월 대선 이후에만 3억9300만달러를 끌어모았다. 지난 5월 말 기준 보유 잔액은 여전히 3억82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WSJ은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이 단체가 사용한 금액이 1000만달러(전체 자금의 약 2.6%)가량에 그친다는 데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슈퍼팩 자금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지원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 퇴임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기부와 정부 정책 사이의 연관성을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담배회사 레이놀즈가 기부한 800만달러 가운데 500만달러가 연방식품의약국(FDA)의 '가향 전자담배 규제 완화' 지침 발표가 나오기 일주일 전에 납입됐다. 기부금 납입 이틀 뒤 레이놀즈 임원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장 오찬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두번째로 많은 자금이 모인 곳은 취임식을 위해 설립된 '트럼프-밴스 취임위원회'로 총 2억4100만달러가 모였다. 양계업체 필그림스프라이드와 암호화폐 리플을 비롯해 100만달러 이상 기부자만 130곳이 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트럼프 도서관 재단'에도 최소 1억300만달러가 모였다. ABC뉴스, 메타, 파라마운트 등 3개 기업이 트럼프 대통령과 소송을 종결하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국고나 제3의 기관이 아니라 이 재단에 직접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도 올해 초 이 재단에 5000만달러를 기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로비인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 연회장 건설을 위한 민간 기부 창구인 '내셔널몰 트러스트'는 기업들이 백악관과 줄을 대는 '대관 창구'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메타, 코인베이스, 팔란티어 등이 기부했고 기부자 대다수는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비공개 만찬에 초청받았다.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의 분석에 따르면 연회장 건립 기부자들이 최근 몇 달 동안 연방정부로부터 따낸 공공 계약 규모만 500억달러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한 '프리덤 250', 워싱턴 골프장 부지에 조성되는 '미국 영웅의 정원' 관련 재단 등도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망에 포함됐다고 WSJ은 전했다.
WSJ은 "많은 경우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비밀에 부쳐진 경우가 많다"며 "이는 대통령의 정책 결정 과정과 권력의 거래를 감시하는 데 커다란 공백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대변인실의 데이비스 잉글은 WSJ에 보낸 서한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기금 모금 능력부터 정책 추진력, 미국 우선주의 의제 실현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라며 "모금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보적인 위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