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법 하나가 조용히 발효됐다. 학교가 학생의 성적을 매기거나, 징계를 내리거나, 대학 진학을 추천할 때 인공지능(AI)을 주된 근거로 쓰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권고가 아니라 어기면 법 위반이다. 오클라호마만이 아니다. 아이다호, 메릴랜드, 버지니아까지 미국 여러 주가 비슷한 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같은 시기 AI 기업이 최고 성능 모델을 공개하기 전 정부가 최대 30일간 안보 검증을 하도록 한 백악관 행정명령도 서명됐다. 국가 차원의 AI 개발은 더 빠르게 밀어주되 교실 안에서는 AI가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황종덕 머니투데이 북미지역 총괄 담당 기자는 머니투데이 공식 유튜브(YouTube) 채널M 'Let美Inside' 코너를 통해 AI 확산이 미국 대입 기준과 전공 지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 입시와 진로 선택에 주는 시사점을 분석했다.
법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은 교실 안의 조용한 전쟁이다. 생성형 AI가 퍼진 몇 년 사이 활동 기록, 에세이, 리서치 결과물까지 AI가 대신 써주면서 학교와 대학은 이게 진짜 학생의 실력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미국 고등학생의 약 46%가 대학 검색부터 에세이 초안까지 AI 도구를 쓴다는 조사도 있다. 문제는 학생만이 아니었다. 교사가 AI로 채점하고, 학교가 AI 추천만 믿고 징계나 진학 상담을 내리는 사례까지 나왔다. 이번 법들의 핵심은 학생의 AI 사용 금지가 아니라 학교와 어른들이 중요한 결정을 AI에 통째로 떠넘기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마침 지금 미국은 입시, 채용, 학점이라는 세 가지 이해관계가 한꺼번에 걸리는 시점이다. 다음달 1일 미국 대입 공동지원서(Common App)가 열리는 것을 앞두고 수험생들은 에세이를 다듬고 있고, 갓 졸업한 청년들은 얼어붙은 취업 시장과 씨름 중이다. 22~27세 대졸자 실업률은 5.7%까지 올랐고 신입 채용 공고는 3년 전보다 35% 줄었다.
미국 대입에는 한국 수능 같은 전국 단일 시험이 없다. 대신 학교마다 지원자를 종합적으로 보는 이른바 '총체적 평가(Holistic Review)'를 한다. 평가 요소는 크게 여섯 가지다. 9~12학년 4년 통합 성적(GPA), 전국 단위 표준화 시험(SAT/ACT), 공통 지원서 메인 에세이 1편과 학교별 보충서류(보충서류는 학교에 따라 1개에서 8개 이상까지 편차가 크다), 교사 2명과 카운슬러 1명 안팎의 추천서, 동아리·봉사·인턴·리서치 등 과외활동(개수보다 깊이와 리더십을 본다), 일부 학교만 요구하는 인터뷰가 그것이다. 지원 시기는 11월 마감·12월 발표 조기전형과 1월 마감·봄 발표 정시전형, 두 갈래로 나뉜다.
입시 준비는 학년별로 역할이 달라진다. 9학년은 내신 관리를 시작하고 동아리를 폭넓게 탐색하는 시기다. 10학년은 PSAT 응시와 대학 수준 선수과목(AP)·우등반(Honors) 수업을 시작한다. 11학년은 입시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가장 중요한 학년'이라고 부른다. 대학이 가장 무겁게 보는 성적표가 이때 나오기 때문이다. 내신 관리와 함께 SAT·ACT 실전, 리더십·인턴십·리서치가 동시에 진행된다. AI 역할도 이 시기가 '리서치 파트너'로 가장 활발하면서도 가장 위험하다. 12학년은 원서 8~12개를 지원하고 에세이·추천서를 완성하는 실행의 시기다. AI는 마감일·요강 비교 용도로만 쓰고 에세이는 반드시 본인의 목소리로 써야 한다는 것이 입시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대입 기준 자체도 흔들리고 있다. 시작점은 2024년 2월 다트머스대학이 코로나 시기 도입했던 '시험 선택제'를 폐지하면서다. 표준화 시험 점수가 내신보다 대학 생활 성공을 더 정확히 예측한다는 자체 연구가 근거였다. 몇 주 뒤 예일, 브라운이 뒤따랐고 4월엔 하버드까지 시험 제출을 다시 필수로 돌렸다. 2026~2027학년도 기준, 하버드·예일·다트머스·브라운·코넬·MIT·캘텍(Caltech)·스탠퍼드·펜실베이니아 등 최상위권 대부분이 시험을 재의무화했다. 미국 U.S. 뉴스 상위 50개 대학 중 시험 선택제를 유지하는 곳은 단 13곳으로 2년 만에 판이 뒤집혔다.
이를 단순한 코로나 정책 원상복구로 보면 절반만 본 것이다. 대학이 진짜 지키려는 건 학위의 가치, 투자 대비 효과(ROI)다. AI가 초급 화이트칼라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시대에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가는 게 값어치가 있나'라는 질문에 대학이 답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입학 단계에서부터 AI가 대신 써준 에세이로 학생을 뽑는다면, 4년 뒤 그 학생이 실력을 갖췄는지 대학 스스로도 보장할 수 없어진다. 버지니아대, 마이애미대 같은 곳은 AI로 손쉽게 채워내는 보조 에세이 문항을 줄이거나 없애는 대신, 교실에서 감독하에 직접 쓰는 글쓰기 샘플이나 '나와 AI의 관계'처럼 검색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개인적 질문을 도입했다. 매끄러운 문장이 오히려 의심을 사서 입시 컨설턴트들이 "너무 세련된 문장을 피하라"고 조언할 정도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캘텍이다. 리서치 논문을 제출한 지원자는 AI가 만든 질문에 10분간 직접 영상으로 답변하는 '비바(VIVA)' 제도를 도입했다. 논문 디펜스를 하듯이 결과물이 아닌 그 자리에서 나오는 진짜 실력을 보겠다는 것이다.
전공 선택의 지형도 완전히 바뀌고 있다. 대학, 기업, 학부모·학생 세 주체가 각자 다른 이유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대학의 계산은 앞서 말한 ROI 방어다. 기업의 요구는 더 복잡하다. 최근 조사에서 기업들은 '비판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을 5점 만점에 4.3점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았고, 'AI 리터러시' 자체는 가장 낮은 우선순위였다. 그런데 동시에 신입 채용 공고 중 AI 기술을 요구하는 비중은 지난해 가을 대비 거의 3배로 뛰었다. 기업이 원하는 건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소통하면서, 그 위에 AI까지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채용 담당자의 23%는 올해 신입 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는데 AI가 신입 업무 상당수를 이미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설문에서는 학생의 약 70%가 AI를 취업의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했고, 악시오스 보도로는 대학생의 47%가 전공 변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가 데이터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가 지난 6월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2025~2026학년도 컴퓨터공학·프로그래밍 전공 등록률이 나란히 10% 넘게 떨어졌다. 애리조나주립대는 1년 만에 14%, 워싱턴대 세인트루이스는 2년 사이 16%가 줄었다. 10년 넘게 취업 보증 전공이었던 자리가 처음 흔들린 것이다. 그 학생들은 AI 대체 위험이 낮은 의료·공학 계열로 옮겨갔다. 간호학처럼 대면 서비스가 필수인 분야는 이탈률 9% 미만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기계·전기공학 같은 전통 공학도 다시 강세다. 동시에 AI를 직접 설계하는 전공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MIT의 'AI와 의사결정' 학과는 몇 년 만에 컴퓨터공학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전공이 됐고, 펜실베이니아대는 아이비리그 최초로 공대 안에 AI 학사 과정을 만들었다. 위스콘신대 매디슨은 올해 7월 'AI 단과대학'을,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은 'AI 경영 응용' 전공을, 하버드는 인간-AI 융합 교과 과정을 새로 짰다. 컴퓨터공학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 있던 것들이 'AI 시대에 살아남는 것'과 '흔들리는 것'으로 갈라지고 있으며, 기준은 하나다. "AI가 나를 쉽게 대체할 수 있는가."
방향은 비슷한데 방식은 꽤 다른 것이 한국이다. 미국이 학제 자체를 쪼개고 새로 만드는 방식이라면, 한국은 정부 주도로 '무전공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문과·이과 벽을 허물고 AI와 결합한 융합학부를 늘리는 방향으로, 한국외대의 'Language & AI 융합학부'가 대표적이다. 입시 기준 변화의 결도 다르다. 미국이 현장에서 치르는 SAT와 구술 디펜스로 돌아갔다면, 한국은 학교생활기록부 기반 면접을 훨씬 강하게 조이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 탐구 활동을 AI로 채워 넣는 이른바 'AI 커닝'이 퍼지면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같은 곳은 "이 탐구 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있었나", "이 개념을 본인의 언어로 설명해봐라" 같은 압박 면접으로 진짜 이해도를 검증한다. 집에서 하는 수행평가는 변별력을 잃으면서 강의실에서 직접 쓰는 논술 전형도 다시 확대되는 추세로, 고려대가 논술 전형을 다시 들여온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전공 선택에서는 한국만의 두드러진 현상이 하나 있다. 의대 쏠림이다. 2026학년도 입시에서 자연계열 내신 최상위 구간(1.0~1.09등급) 학생 564명 가운데 89%가 의대에 최소 한 장 이상 원서를 냈다. 미국 학생들이 의료, 전통 공학, 데이터사이언스, 융합 전공으로 흩어지며 'AI가 대체 못 하는 능력'을 여러 곳에서 찾고 있다면, 한국의 최상위권은 그 답을 사실상 의사 면허 하나로 좁혀서 찾고 있는 셈이다. 미세한 변화도 있다. 카이스트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 수시 지원자는 올해 전년보다 16% 늘었고, 영재고·과학고 출신의 의대 진학은 2024학년도 167명에서 올해 97명으로 42% 줄었다. 최상위 과학 인재 중 일부가 의대 대신 첨단 기술 쪽으로 방향을 트는 신호다. 그러나 전체 그림에서 보면 여전히 압도적 다수는 의대로 향하고 있다.
정작 미국에서도 '의사와 변호사는 완전히 안전하다'고 믿지 않는다. 지난 4월 하버드·스탠퍼드 연구진이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오픈AI(OpenAI)의 추론 모델이 응급실 초기 진단 정확도 67%를 기록해 의사 평균 50~55%를 앞질렀다. 연구진은 이를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도구로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고, 실제로 방사선과 의사 수는 2016년 'AI가 방사선과를 없앨 것'이란 예측 이후에도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진단이라는 의사의 핵심 업무에서조차 AI가 사람을 앞선 사례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예전엔 없던 균열이다. 법조계도 다르지 않다. 로펌들은 계약서 검토 시간을 AI로 4시간에서 1시간 24분으로 줄이고 비용은 최대 70%까지 절감하고 있다. 신입 변호사가 하던 리서치와 서류 검토를 AI가 가져가면서, 로펌들은 신입 채용 대신 경력직 채용을 늘리고 있고 '다음 세대 시니어 변호사를 키울 훈련 과정 자체가 사라진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은 '문과 최고 직업'인 변호사와 '이과 최고 직업'인 의사조차 AI 앞에서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대학과 로펌, 병원이 각자 대응책을 짜는 중이다. 반면 한국은 의대를 흔들리지 않는 유일한 안전판으로 여기며 최상위권 쏠림이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같은 기술, 같은 위협 앞에서 미국은 '완전히 안전한 직업은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한국은 '의대만은 안전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황 기자는 국가와 대학이 AI가 만들어낸 완벽한 가짜를 걸러내는 시스템을 이미 구축했고, 그 결과 학생들은 기술에 기대지 않는 '진짜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짚었다. 전공을 고를 때도 에세이를 쓸 때도, 결국 질문은 하나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지금 당장은 의대가 안전해 보이지만, 미국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어떤 직업이든 완전한 안전지대는 없고, 결국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역량을 쌓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머니투데이 공식 유튜브 '채널M'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채널M은 미국에 상주하는 기자가 발 빠르게 수집한 정보들을 싹싹 긁어모아 말해주는 경제 비하인드 스토리를 'Let美Inside' 코너를 통해 전달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진짜' 경제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