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미국 원자력법 123조에 바탕을 둬 '123협정'으로 불리는 이번 협정은 사우디의 자체 핵물질 농축과 재처리를 잠재적으로 허용, 무기급 핵물질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전쟁의 출구를 못 찾는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연속 이란공습과 별개로 최근 중동외교를 적극 펼치는데 이란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사우디 핵물질 보유 가능성 열어둬
미국 에너지부는 22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 계정을 통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인 압둘아지즈 빈살만 왕자가 '123협정'으로 알려진 평화적 원자력 협력협정과 이에 수반되는 양자 안전보장조치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소개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뉴욕타임스·로이터통신 등을 종합하면 미국이 사우디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원전연료를 위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플루토늄 추출) 기술을 이전하되 농축·재처리엔 미국 인력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다만 2년간 공동연구에서 상업적 타당성이 입증된다는 전제 아래 사우디가 자국에 매장된 우라늄을 채굴하거나 수입해 농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다. 2009년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미국과 123협정을 맺은 아랍에미리트(UAE)의 경우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막는 '골드스탠더드'를 적용하고 추가의정서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도 허용했다.
이로써 중동패권을 두고 이란과 경쟁하는 사우디는 이란이 핵무기 보유문턱에 다가선 상황에서 핵 잠재력을 확보하게 됐다. 외교가 일각에선 미국이 이란에는 핵프로그램 폐기와 핵물질 반출을 요구하며 전쟁을 벌이면서 사우디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트럼프, 무력 외에 외교로 이란 '핵능력' 견제
외신들은 '123협정'에 대해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사우디와 관계를 안정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전쟁으로 중동 내 '균열'이 생긴 상황에서 사우디를 미국 중심의 안보질서에 밀착하기 위해 협정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전 미국 국무부 고위관료인 로버트 아인혼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 협정은 미국 원자력산업을 활성화하고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강화하며 러시아와 중국이 사우디 핵프로그램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중동외교는 최근 활발하다. 특히 이란과 가까운 나라들과 잇따라 접촉했다.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흐메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47년 만에 시리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 어어 14일엔 이라크의 알리 알 자이디 총리를 백악관에서 만나 이슬람국가(IS) 점령기간에 손상된 인프라 재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21일엔 조지프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안보 및 경제부문에서 포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은 이란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초승달 벨트'의 일부다. 중동 내 이슬람 시아파 국가들의 동맹전선인 셈이다. 미국이 이들 국가와 외교적 교류에 나선 것은 역내 이란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미국 중심의 질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