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 강제이주, 미·이란 전쟁에 또…고향 잃은 차고스 사람들

김완렬 기자
2026.08.17 07:00

[초크포인트]

인도양에 위치한 영국령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 2025.12.08 ⓒ 로이터=뉴스1

"미군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며 우리를 쫓아냈어요. 하지만 저는 그곳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대대로 우리 가족이 그곳 묘지에 묻혔어요. 우리에게 다른 고향은 없습니다."

안네-마리 젠드론은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 출신이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1967년부터 이곳 주민들을 인근 모리셔스 등으로 이주시켰다. 젠드론은 그렇게 고향을 떠난 약 2000명 중 한 명이다. 젠드론은 최근 BBC에 "(당시) 어떤 사람들은 짐조차 싸지 않았다"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차고스 사람들은 또 한 번 고향의 운명을 둘러싼 결정에서 밀려날 처지다. 이란 전쟁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 속에 차고스 제도의 군사적·전략적 가치가 부각되면서다.

빨간 점이 차고스 제도/사진=구글맵

미군기지 들어서자 고향에서 쫓겨난 주민들

차고스를 포함한 모리셔스는 영국 식민지였다. 영국은 1965년 모리셔스에서 차고스 제도를 분리, '영국령 인도양 영토'로 설정했다. 2년 뒤 영국은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디에고 가르시아에 미국과 합동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섬뿐 아니라 이웃한 산호섬에 살던 주민들 모두 집을 떠나야 했다. 1974년 차고스 제도 주민 약 2000명은 모두 모리셔스나 세이셸로 강제이주했다.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모리셔스는 차고스 제도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영국이 모리셔스 독립을 조건으로 차고스 분리에 동의하도록 압박했다는 주장이다. 2019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모리셔스의 탈식민화 과정이 합법적으로 완료되지 않았으며, 영국은 "가능한 한 빨리 이 군도에 대한 통치를 종료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강제적 구속력을 가진 판결은 아니었지만 이는 영국 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영국은 2022년 차고스 제도 반환을 놓고 모리셔스와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5월, 키어 스타머 당시 영국 총리와 나빈 람굴람 모리셔스 총리가 영국-모리셔스 협정을 맺는다. 이를 통해 차고스 제도 반환이 가시화되자, 차고스 출신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영국 상원 국제협정위원회가 지난해 6월 25일 발간한 '디에고 가르시아를 포함한 차고스 제도에 관한 영국-모리셔스 협정' 보고서. 같은해 5월 22일 서명된 영-모리셔스 협정을 심의한 내용을 담았다. /사진=영국 정부 공식 웹사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초기에 협정을 지지했으나 이란 공습을 앞두고 입장을 바꿨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차고스 제도에 대한 주권 이양 계획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했다. 이란 공습을 며칠 앞둔 2월에는 "국가 간 문제에서 임대 방식은 좋지 않다"며 "인도양의 전략적 요충지인 디에고 가르시아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모리셔스 협정이 정식 발효되려면 영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스타머 전 총리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 없이는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났다. 차고스 제도를 넘겨줄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는 영국 보수 진영의 비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관련 법안은 2024~2026 의회 회기가 종료되며 사실상 폐기 상태다.

60년 전에도 지금도… 차고스 운명에 주민은 없다
(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백신 접종 유연성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2026.8.10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뉴욕타임스(NYT)는 앤디 버넘 영국 신임 총리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아직 불투명하다면서도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이란 전쟁 상황 속에서 전략적 요충지인 점을 짚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은 이란의 잠재적 공격을 근절하기 위해 디에고 가르시아에 있는 공군기지를 이용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6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곳의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차고스 제도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차고스 제도의 향방을 두고 이주민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일부는 모리셔스가 차고스 주민들의 귀향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한 데 기대를 걸고 있다. 다른 일부는 주권 반환에 반대한다. 자신들과 상의 없이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차고스 제도 주민들이 우선권을 갖는단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 AFP=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한 시위자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댄 케인 합참의장, 브룩 롤린스 농무장관이 증언하는 동안 피켓을 들고 있다. 2027.07.21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AFP=뉴스1) 최종일 선임기자

여기에 이란 전쟁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차고스 이주민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반환 논의가 표류하는 동안 차고스에서 태어난 이주민들의 수는 계속 줄었다. 현재 이주민 생존자는 수백명 정도다. NYT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발언권을 잃을까 우려한다. 만약 섬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고스 고유의 문화와 역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

60년 전 군사 기지 건설을 위해 고향에서 밀려났던 차고스 주민들은 또다른 지정학적 이해관계 속에서 다시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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