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초크포인트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두고 미국과 날 선 대치를 이어가면서 또다른 '초크포인트'가 주목받고 있다.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두고 미국과 날 선 대치를 이어가면서 또다른 '초크포인트'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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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토 야망이 또 다른 '매물'을 향하고 있다. 인도양 한복판 여러 섬들이 모인 '차고스 제도'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모리셔스로부터 인도양의 영국령 차고스 제도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차고스 제도 가운데서도 미국의 핵심 군사기지가 있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이 주목된다. 중동과 동아프리카, 인도·태평양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중국과의 패권 경쟁과 미국의 글로벌 군사 전략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초크포인트'라는 의미가 있다. ━"중동·홍해·인도양 한눈에"…美 '불침항모' ━ 차고스 제도는 모리셔스 북동쪽에서 약 1600km 이상 떨어진 60여 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다. 면적만 놓고 보면 세계 지도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섬들에 불과하지만 전략적 가치가 상당한 위치다. 냉전 시기 미국과 영국은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를 공동 구축했다. B-52 전략폭격기와 B-1B, B-2 스텔스 폭격기 운영이 가능한 활주로와 대형 군함 수십 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항만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서 '60일간 호르무즈 해협의 무료 통항'을 약속했지만 이란은 그 기간 이후 수수료를 부과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국제 해운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자연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수수료를 걷는 튀르키예의 다르다넬스·보스포루스 해협 사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수수료는 국제조약에 근거한 제도라는 점에서 이란의 일방적 움직임과는 엄연히 다르단 지적이다. 튀르키예 북서부에 위치한 보스포루스와 다르다넬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유일한 해상 통로다. 흑해에서 출발한 선박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마르마라해로 진입한 뒤 다시 다르다넬스 해협을 거쳐 지중해에 도달한다. 흑해 연안국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려면 이 두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원유 수출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 러시아의 해군력 균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략 요충지로 꼽힌다. 두 해협은 튀르키예의 영해에 속하지만 1차 세계대전 패배로 튀르키예는 한때 이 해협에 대한 군사적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두고 미국과 날 선 대치를 이어가면서 또다른 '초크포인트'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집트에 위치한 수에즈 운하다. 아라비아반도 동쪽의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반도 서쪽의 수에즈운하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영국이 약 70년 전 수에즈 운하 통제권을 잃으며 초강대국의 지위를 내려놓았던 역사도 소환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내리막을 걷던 영국이 수에즈 운하에서 결정적 후퇴를 경험했듯 이번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비슷한 일을 겪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유럽-아시아 최단 경로…막히면 시간당 4억달러 손해━1869년 완공된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길이 약 193㎞의 인공 수로다. 전세계 해상 교역량의 약 12%를 담당한다. 아시아(홍해)와 유럽(지중해)간 가장 짧은 항로의 핵심부다. 홍해 남단의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더불어 홍해를 열 수도 닫을 수도 있는 위치다. 이 운하의 등장으로 아시아~유럽 항로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우회할 때보다 최대 9000㎞ 단축됐고, 항해 시간은 15일 가량 줄었다.
중동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아시아-북미 항로의 핵심 관문인 파나마 운하가 이례적인 호황을 맞았다. 중동발 원유 공급 불안으로 미국산 원유 수요가 급증하자 이를 실어 나르려는 유조선들이 파나마 운하로 대거 몰린 영향이다. 파나마는 북미대륙과 남미대륙을 실처럼 잇는 좁은 국토에 운하를 만들었다. 특히 미국에게 파나마 운하는 핵심 해상 물류로이자 전략적 안보 거점이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등 초크포인트(조임목)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파나마 운하가 갖는 전략적 가치도 한층 부각되는 모습이다. ━파나마 '새치기' 가격 사상 최고━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길이 약 82㎞의 갑문식 운하다. 미국 원유 생산의 중심지인 멕시코만 연안과 최대 소비처인 아시아를 잇는 최단 경로다. 예컨대 멕시코만 연안에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해 일본을 가자면 거의 두 달이 걸리지만 파나마 운하를 통하면 약 한 달로 단축된다. 전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5%가 통과하지만 글로벌 물류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인도네시아가 말라카 해협에서 이란 호르무즈 해협처럼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철회하면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말레이시아 반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최단거리로 잇기에 세계적으로 중요한 수송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란이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을 막고 통행료를 받을 태세를 보이면서 말라카해협 등 또다른 해상 길목을 틀어쥔 나라들이 이른바 '초크포인트'(조임목)를 무기화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태평양-인도양 최단거리 길목━26일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인도네시아 재무부 장관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 행사에서 "우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무역·에너지 항로에 있는데도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 논란을 샀다. 호르무즈 해협을 막아서고 통행료를 받는 이란 사례와 자유 통행이 가능한 말라카 해협을 비교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말라카해협 인접국가들이 반발했고 인도네시아도 진화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