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재개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1일(미국 동부시간) 전 세계 채권시장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주요국의 재정 적자 누적과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채권 발행 폭증까지 맞물리면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의 국채 금리가 수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 각국 정부와 기업, 가계의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이 크게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4.788%를 기록, 2025년 1월 중순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모기지 금리의 기준이 되는 30년물 국채 금리 역시 5.272%까지 오르며 2007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3.0%까지 치솟으며 1996년 10월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도 장중 5.919%까지 오르며 1998년 이후 28년 만의 최고치를 고쳐 썼고, 독일 10년물 금리 역시 3.339%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중동발 유가 충격이 채권 금리를 강하게 밀어 올렸다. 미국이 이란 공습을 중단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달 30일부터 이란 공격을 재개하면서 원유 공급망 차질 우려가 다시 불거졌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피격 사건이 잇따른 것도 유가를 자극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장보다 2.88% 급등한 배럴당 88.23달러,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11월물 역시 2.30% 오른 92.57달러에 거래됐다.
유가 급등이 되살린 인플레이션 우려는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가 더 길고 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으로 이어지며 채권시장을 흔들었다. 기업들이 AI 인프라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 발행을 쏟아내면서 시장 내 자금 소진 속도가 빨라진 점도 금리 상승을 부채질했다. 일본의 경우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 계획과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채권 금리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통화당국의 정책 경로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호주 바렌조이의 앤드루 릴리 수석 금리 전략가는 "이번 채권 매도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재평가에서 비롯됐다"며 "연준이 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시작으로 최소 세 차례 연속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지난달 28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로 둔화하지 않을 경우 추가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히면서 시장에선 연준의 통화 긴축 기조 전환 관측이 커지는 분위기다.
채권 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에선 자금 조달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조짐이다. 특히 총 국가부채가 지난달 40조달러(약 5경 5500조 원)를 넘어선 미국 정부의 경우 2026회계연도 종료를 두 달가량 앞둔 현재 연방정부의 누적 이자 비용이 이미 1조 1700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5% 늘어난 상황이다. 시장에선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부담 확대가 각각 투자 축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금리 상승이 겹쳐서 일어나는 현상) 우려를 키우고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OCBC의 외환·금리 전략 책임자인 프랜시스 청은 "유럽과 영국에선 인플레이션 우려가 채권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면, 미국은 장기 금리 상승이 상당 부분 실질금리 상승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차입 비용 자체가 높아진 것은 경제 전반에 더 직접적이고 긴 중장기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월가에선 채권시장발(發) 증시 위축 우려도 고개를 든다. 일각에선 금리 폭등세가 AI 주식 거품이 터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