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의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고급 인재를 스스로 밀어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민 규제가 강해지고 연구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이 중국은 미국에서 훈련받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중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8일(현지시간) 브라이트바트 뉴스 행사에서 "중국이 AI 경쟁에서 미국을 앞선다면 다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취지로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베선트 재무장관이 중국에 AI 주도권을 내줄 경우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더라도 미국의 안보 우위를 지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고 9일 전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기술 견제가 오히려 인재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17일 미국의 연구비 삭감과 제한적인 이민정책, 중국계 과학자에 대한 경계심이 맞물리면서 미국의 전통적인 인재 흡인력이 약해진다고 분석했다.
미국으로 향하는 외국인 인재의 통로는 좁아지는 추세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발급한 국제학생 비자는 전년보다 23% 줄었다. 미국 유학생 비자(F-1) 거부율은 35%까지 치솟아 최근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계에서 미국으로 유학가려는 학생 3명 중 1명꼴로 비자 심사에서 탈락한 셈이다.
미국 과학계는 외국 인재에 의존해온 정도가 크다. 미국이민정책국가재단(NFAP)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미국인이 받은 화학·생리의학·물리학 노벨상 가운데 약 40%를 이민자가 차지했다.
그러나 비자 장벽이 높아지고 이민 불확실성이 커지자 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인재가 잇따른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 교육부 집계로 지난해 해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은 53만5600명에 달한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양즈린 문샷AI 공동창업자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간 대표적 AI인재다.
그는 구글과 메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애플의 취업 제안도 받았지만 중국으로 돌아가 문샷AI를 창업했다. 문샷AI가 지난 7월 공개한 오픈소스 AI 모델 '키미 K3'는 미국의 최상위 모델에 근접한 성능을 낮은 비용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즈린의 귀국을 미국 비자 문제때문만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이민제도가 외국인 AI 연구자가 미국에서 곧바로 창업하기에 불리한 구조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미국 비영리 매체 '레스트오브월드'는 미국의 현행 H-1B 비자나 취업 이민 제도에 따르면 외국인 인재가 졸업 후 현지에서 곧바로 창업가로 서기에 불리하고 불확실성이 크다고 지난달 25일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오마르 야기 교수는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를 떠나 중국 칭화대에 합류해 AI를 활용한 신소재 개발 연구를 이끈다. 야기 교수는 영국 교육 주간지 타임스하이어에듀케이션(THE)에 미국의 연구 예산 삭감과 심화된 이민 규제 때문에 환멸을 느껴 자리를 옮겼다고 말했다.
세포 내부를 원자에 가까운 수준으로 시각화하는 연구로 알려진 장카이 교수 역시 올해 예일대를 떠나 중국과학기술대로 옮겼다. 미국 내에서 중국계 과학자에 대한 감시가 강화된 게 한 배경으로 꼽힌다. 장 교수는 지난 3월 중국과학보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중국인 학자가 이 정도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미국 인재 경쟁력이 이미 중국에 넘어갔다고 단언할 순 없다. 미국 대학에서 연구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 국적자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미국에 남길 희망한다. NYT는 중국이 자금과 연구 인프라 측면에서 미국과 격차를 좁히고 있지만 연구자의 자유와 제도적 안정성은 여전히 미국의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민 장벽이 높아지고 연구 환경도 불확실해진다면 인재 흡인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적인 수학자 테런스 타오 UCLA 교수는 NYT에 "과거 미국은 최고의 인재에게 사실상 당연한 선택지였다"면서도 앞으로 고급 인재가 자동으로 미국을 선택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