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미국 증시에선 AI(인공지능) 수혜주를 중심으로 기술주가 하락한 반면 방어주인 헬스케어 업종과 안전자산인 국채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국채 가격은 수익률과 반대로 움직인다.) 본격적인 순환매와 자금 이동이 시작된 것인지 주목된다.
지난 9월 한달간 S&P500지수 내 11개 업종 중 상승 업종은 정보기술(IT)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15일(현지시간)엔 반대 양상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업종이 오른 반면 IT업종은 하락한 것이다.
이날 S&P500지수 내 11개 업종 가운데 하락 업종은 에너지(-1.6%)와 IT(-0.7%), 유틸리티(-0.2%) 뿐이었다. 유틸리티는 전통적인 방어업종이지만 AI(인공지능) 활용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며 대표적인 유틸리티인 전력주가 AI 수혜주로 취급되고 있다.
반면 방어업종으로 꼽히는 헬스케어는 이날 1.9% 오르며 상승폭이 가장 컸다. AI 투자 확대에 따라 일부 기술기업들이 채무 우려에 휩싸이자 방어주로 순환매가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소재(1.8%)와 경기소비재(1.7%)가 헬스케어 다음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며 경기 민감업종도 강세였다.
흥미로운 점은 기술주 중에서도 AI 호황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린 반도체 및 하드웨어와 AI 기술에 사업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소프트웨어 업종이 엇갈린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0.9% 하락한 반면 아이셰어즈 익스팬디드 테크-소프트웨어 ETF(IGV)는 1.8% 올랐다.
이에 대해 잭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브라이언 멀버리는 "분명한 대규모 자금 이동"이라고 평가했다. 멀버리의 지적처럼 주식시장 내의 순환매도 뚜렷하지만 더욱 주목되는 현상은 안전자산인 국채로의 자금 유입이다.
미국의 국채수익률은 이란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과 미국 국가부채 증가 우려, AI 투자를 위한 기술기업들의 막대한 회사채 발행 등을 배경으로 지난 8월 말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날(14일) 9월 소비자 물가지수(CPI)에 이어 이날 9월 생산자 물가지수(PPI)까지 시장 예상치를 상회한 것으로 발표되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졌음에도 국채수익률은 지난 13일부터 3일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다.
다만 시카고 상거래소(CME) 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이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상 전망은 CPI 발표 전 22%대에서 PPI까지 공개된 후 28%대로 소폭 오르는데 그쳤다.
팩트셋에 따르면 이날 10년물 국채수익률은 0.1%포인트 급락한 5.086%로 마감하며 지난해 8월1일 이후 일일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30년물 국채수익률도 거의 0.1%포인트 떨어진 5.427%로 거래를 마쳤다.
리틀 하버 어드바이저스의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마이크 톰슨은 AI 투자 붐이 둔화되며 경제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최근 발표된 인플레이션 지표보다 국채수익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 장기 국채수익률은 하락 압력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는 "AI 수혜주가 심각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AI 투자 둔화가 기업들의 자본지출 감소로 이어진다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지는 거시경제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더라 국채 가격은 상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형 채권 운용사인 핌코는 10년물 국채의 실질 수익률이 약 3%까지 상승한 점에 주목했다. 명목수익률에서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뺀 실질 수익률이 높아지자 장기 투자자들이 다시 국채를 사들이면서 이번주 국채 가격이 반등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채 가격 하락에 베팅했던 투자자들의 포지션 청산도 국채 가격 반등폭을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채 선물가격 하락에 베팅한 매도 포지션은 과거와 비교해 극단적인 수준까지 늘어났다.
리틀 하버 어드바이저스의 톰슨은 국채에 대한 투자 심리가 이처럼 비관적으로 치우쳐 있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매도 포지션을 청산하면 국채 매수세가 급격히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ING 그룹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만큼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이 다시 5.25~5.5% 범위로 오버슈팅할 가능성은 여전하다며 5% 밑으로 떨어져 안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