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와 신화 속 인물들이 랩으로 현대인의 고충을 위로하는 인공지능(AI) 제작 영상이 중국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주거비와 고용 불안, 직장생활의 압박을 옛 인물들의 시련과 연결하면서 현실에 지친 중국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후베이일보 등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AI로 제작한 중국어 랩 '궈라이런(過來人: 먼저 겪어본 사람)'은 공개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여러 플랫폼에서 합산 조회수 1억회를 넘겼다. 궈라이런은 지난 13~15일 웨이보와 더우인, 위챗 영상계정 등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궈라이런에는 두보와 이백, 소동파, 항우, 손오공 등 중국 역사와 신화 속 인물 10명이 등장한다. 고전 구절을 읊거나 교훈을 전달하는 대신 자신이 겪은 고난을 랩으로 풀어내며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첫 주자로 등장하는 두보는 마흔이 넘어서도 수도 장안에서 세를 살며 집주인의 거듭된 임대료 인상에 시달리는 처지로 묘사된다. 주택담보대출과 각종 생활비를 감당하는 현대인의 현실에 자신의 고충을 겹쳐놓는다. 잦은 좌천과 유배를 겪은 소동파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대신 얘기한다. 중국에서 35세 이상 노동자가 고용 불안에 직면하는 사회 현상을 뜻하는 '35세의 저주', 기업이 해고를 에둘러 표현할 때 쓰는 '최적화' 등이 랩 소재로 등장한다.
이어 유방은 주변의 무시를 견디고 7년의 전쟁 끝에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고난이 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항우는 패배 후 강을 건너지 않았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체면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고 조언한다. 손오공은 "풀려난 뒤에도 머리에는 나를 조이는 고리가 씌워졌지. 너를 조이는 고리의 이름은 주택대출, 핵심성과지표인 KPI, 그리고 남들의 시선이겠지"라고 말한다.
지난 25일 기준 중국 동영상 플랫폼 더우인에서 해당 영상의 '좋아요'는 300만개, 댓글은 9만7000개를 넘었다. 댓글란에는 경력 단절과 주택대출 부담, 가족을 잃은 슬픔 등을 털어놓는 글이 이어졌다. 한 이용자는 "중년의 고단한 현실을 담아낸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라고 평가했다.
궈라이런의 제작 기간은 3~4일이었다. AI 서비스 구독료와 연산 비용으로 수천위안이 들었다. 전통적인 뮤직비디오 촬영에 필요한 예산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다.
제작자는 우한 출신 감독이자 AI 콘텐츠 창작자인 왕쿤저다. 그는 2013년 우한방송국에 입사한 뒤 3년 만에 퇴사해 개인 스튜디오를 세웠다. 이후 우한의 지역 문화와 생활을 담은 단편영상을 제작했다. AI 창작에 나선 뒤에도 역사와 신화 속 인물을 활용한 음악영상을 꾸준히 선보였다. 이백이 우한 마라톤 코스를 달리고 악비가 결승선을 앞두고 노래하는 작품 등이 대표적이다.
왕쿤저는 음악 장르와 구성, 속도, 초기 가사를 직접 정하고 AI 도구로 편곡을 시험하며 결과물을 반복적으로 수정했다. 왕쿤저는 "AI는 콘텐츠를 대량생산할 수 있지만 공감과 감정적 울림까지 대량생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궈라이런은 고통을 나열하려는 작품이 아니라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