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바이낸스가 가상화폐 역사상 최대 규모인 63억달러(약 8조4000억원)의 해킹 피해를 입은 20여분 동안 임직원들이 자산이 실시간으로 유출되는 상황을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지켜봤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1일(현지시간) 전했다.
WSJ에 따르면 해킹 사건은 미 동부시간으로 지난 29일 오후 4시20분 발생했다.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커들은 20여분 만에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트론(TRX), 솔라나(SOL) 등 10개 주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연결된 바이낸스의 온라인 연동 지갑을 집단 공격해 자금을 쓸어 담았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소재의 바이낸스 보안팀은 해킹 초기 10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무단 인출된 사실을 감지하고 곧바로 경영진에 보고했다. 고위 임원진을 중심으로 긴급 화상회의가 소집되고 약 100명의 위기대응팀 전원이 수 분 만에 회의에 접속했다.
해킹 피해 자금은 오후 4시40분쯤 6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해킹 공격이 시작된 직후 내부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임직원들은 계좌에서 자산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공포감에 사로잡은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사이 시장에는 바이낸스에서 수십억달러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오후 4시32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확인되진 않았지만 바이낸스에 대규모 해킹 가능성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보다 앞서 블록체인 분석업체들의 자동 경보 시스템은 전 세계 주요 가상화폐 투자자와 고객사에 이상 거래 사실을 알렸다. 오후 4시38분 비영리 보안 단체 SEAL의 연구원 테일러 모나한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에 긴급 연락을 취하면서 테더와 서클은 즉각 의심 거래를 추적하고 관련 지갑을 동결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바이낸스도 가상화폐 추적 파트너사인 TRM 랩스, 체이널리시스, 엘립틱과 협력해 탈취 자금이 들어있는 디지털 지갑 주소를 파악하고 자금 동결을 위한 공조에 나섰다.
바이낸스와 세계 각국 블록체인 기업, 동료 개발자 집단이 동결 작업에 나서면서 탈취당한 63억달러 가운데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온체인상에서 동결하는 데 성공했다.
해커들도 탈취한 자금을 빠르게 동결 불가능한 자산으로 옮겼다. 오후 5시 해커들은 탈취한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6000만달러 상당을 가상화폐 대출 플랫폼 'Aave'에 예치하고 이를 담보로 이더리움 약 2만개(당시 기준 약 4460만달러 상당)를 빌렸다. 자금 동결 기능이 있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중앙에서 직접 동결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바꿔 자금 추적과 동결을 피하려 한 것이다.
TRM 랩스에 따르면 Aave 등이 곧바로 대출을 중단했지만 해커들은 결국 약 24억달러 상당의 가상화폐 자산을 갖고 빠져나갔다. 소셜미디어에서 사실 확인 여론이 확대되자 바이낸스는 오후 5시15분 공식 입장을 내고 해킹 사실을 인정했다.
보안업계 분석 결과 해커들은 바이낸스 내부 개발운영 엔지니어의 기기를 해킹해 서버 접근 권한을 탈취한 뒤 이더리움의 최신 서명 위임 규격인 'EIP-7702'의 허점을 노린 것으로 조사됐다. 지갑의 비밀키 자체를 유출하지 않고도 서명 인프라를 우회해 초당 50건 이상의 무더기 위임 서명을 전송, 정당한 출금 요청인 것처럼 위장해 자금을 유출했다.
TRM랩스와 체이널리시스 등은 이번 공격의 유력한 배후로 북한 연계 해킹 조직인 트레이더트레이터를 지목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해킹 범행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
바이낸스는 이날 추가 공지를 통해 탈취당한 토큰의 90%를 벌충했다며 11월1일부터 출금 서비스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