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 대구주행시험장 외곽. 약 1.2㎞ 구간을 따라 태양광 패널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설비지만 이곳에서는 또 하나의 역할을 한다. 신차와 타이어 등을 시험하는 주행장을 외부 시선으로부터 가리는 '보안용 가림막'이다. 실제로 태양광 패널 너머로는 시험장 내부 트랙이 보이지 않았다.
대구주행시험장은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KIAPI)이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 시험·인증시설이다. 완성차와 타이어 업체 등이 이곳에서 차량 주행시험을 한다. 시험 중인 차량과 기술이 외부에 노출돼서는 안 되는 보안시설인 만큼 시험장 둘레를 가릴 시설이 필요했다. 그러나 긴 트랙을 따라 별도의 벽을 세우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이 문제를 태양광으로 푼 곳이 달구벌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하 달구벌조합)이다. 시험장 외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발전설비와 보안용 가림막 기능을 겸하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준공한 이 발전시설의 설비용량은 999.68킬로와트(㎾)로 1메가와트(㎿)에 육박한다.
시험장 측은 가림시설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보안을 강화하는 동시에 부지 임대료를 얻는다. 조합은 발전소를 세울 부지를 확보해 전력을 판매한다. 양측의 '윈윈'이다.
김진섭 달구벌조합 사무국장은 "시험장은 차폐막을 설치할 비용이 부족했고 조합은 태양광을 설치할 부지가 필요했다"며 "태양광 패널로 시험장을 가리면 기관은 별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시설을 얻고, 조합은 발전사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민햇빛발전소 19호기'이기도 한 대구주행시험장 발전소는 달구벌조합을 포함한 시민협동조합이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시민들은 발전소를 지을 만한 넓은 토지나 건물 옥상을 갖고 있지 않아 공공기관의 유휴부지를 주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관 입장에서는 부지를 내주면 계약과 안전관리, 시설물 관리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 공간을 굳이 발전사업자에게 빌려줄 유인이 크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조합은 해당 기관이 시설을 운영하면서 겪는 불편과 필요한 기능을 파악하고, 태양광 발전시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대구주행시험장 부지 역시 당초 대구시가 KIAPI에 출연해 현재 KIAPI가 소유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시유지가 아니지만 공익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이 같은 접근법은 다른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도 나타난다. 대구의 또 다른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대경기술실용화본부의 요구를 반영해 주차장 태양광을 추진했다. 여름철 대구의 뜨거운 햇볕에 장시간 노출된 차량 내부 온도가 크게 오르자 주차장에 그늘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나왔다. 주차면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전력을 생산하면서 차량을 햇볕과 비로부터 보호하는 차양막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연구원은 별도의 차양시설을 마련할 필요가 없고, 조합은 이미 개발된 공간에서 태양광 부지를 확보한다.
달구벌조합이 태양광을 설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대경권연구센터에서는 옥상 누수 우려가 걸림돌이었다. 고가의 연구장비가 있어 태양광 구조물을 설치한 뒤 빗물이 새면 피해가 클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조합은 구조물이 들어서는 부분의 방수를 보강하고 빗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배수시설을 정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태양광 설치가 옥상 관리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연구원은 추가 설치도 검토하고 있다.
달구벌조합도 전기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발전사업자다. 그렇다면 일반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와 무엇이 다를까. 차이는 패널이나 발전 방식이 아니라 발전소를 누가 소유하고,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며, 수익이 어디로 돌아가느냐에 있다.
일반 기업은 지분과 경영권을 가진 주주가 의사결정을 하고 이익도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시민협동조합에서는 출자액과 관계없이 조합원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조합원들이 정기총회에서 이사장과 이사를 선출하고 배당과 사업 방향을 결정한다.
달구벌조합에는 시민 약 200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출자금을 모아 발전소 건설비를 마련하고 운영 수익 가운데 일부를 배당받는다. 조합은 연 5~6% 수준의 배당을 목표로 운영하는 한편, 지역사회 기부와 시민 대상 에너지 활동도 지원한다. 지난해에는 약 1000만원을 기부하고 지원조직 활동비도 부담했다. 조합원 배당과 지역사회 환원에 사용하는 금액이 매출의 15~20% 수준이다.
협동조합이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뜻은 아니다. 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고 조합원 참여를 끌어내려면 일정한 수익과 배당이 필요하다. 다만 발전 수익이 소수 사업자에게 집중되지 않고 시민과 지역 안에서 순환하도록 설계한다는 점이 영리법인과 다르다.
이 같은 구조는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외부 기업이 지역에 발전소를 세우고 수익을 가져가면 주민에게 태양광은 경관과 생활환경에 영향을 주는 외부 시설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반면 지역 시민이 발전소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수익 일부를 지역사회에 돌리면 주민은 전력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에도 참여하게 된다.
대구에는 이렇게 시민 협동조합이 사업자가 돼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는 태양광 발전소가 총 25개로, 설비용량 3.144MW 규모다. 이들 발전소의 연간 예상 발전량은 약 4131MWh로, 약 1000가구 이상에 1년간 공급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이 가운데 현재 가동 중인 19곳의 설비용량은 2.344MW, 연간 예상 발전량은 약 3080MWh다.
조합 역시 대구 소재 협동조합은 달구벌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대구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안심에너지협동조합, 청라시민에너지협동조합, 자전거시민에너지협동조합 등 점차 늘어나고 있다.
대구는 국내 시민협동조합 태양광 발전의 역사가 시작된 도시다. 2004년 세계솔라시티총회를 개최한 뒤 태양광 발전 확대를 위한 시 조례와 공공부지 활용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2008년 수성구 소재 공원인 수성못 상화동산에 시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만든 '시민햇빛발전소 1호기'가 들어섰다. 당시 대구시장인 김범일 전 시장도 출자자 중 한 명이다.
당시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시민 20여명이 약 2억원을 모았지만 협동조합 형태로 법인을 설립할 수 없어 주식회사 방식으로 30㎾ 규모 발전소를 세웠다. 이후 동주민센터 옥상과 공공시설 등으로 시민햇빛발전소가 확산했고,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에는 시민에너지협동조합들이 그 흐름을 이어받았다.
대구시는 지난 2023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등을 통해 2030년까지 총 10MW 규모 시민햇빛발전소 100기를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달구벌조합을 비롯한 지역 협동조합들은 발전소 부지를 발굴하고 조합 설립과 운영, 인허가, 유지보수 등을 지원하고 있다.
김진섭 국장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빨리 높이려면 자본력이 큰 기업에 부지를 몰아주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며 "하지만 시민이 직접 발전소를 소유하고 그 수익이 지역에 남도록 하면 주민수용성을 높일 수 있고, 이 역시 에너지전환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