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케이스스터디
녹색전환·탄소배출 저감은 거대한 과제이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데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머니투데이가 탄소배출 저감과 에너지전환을 향해 가는 '현재 진행형' 사례들을 매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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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주택은 지난달 전기요금이 전년 동월보다 약 5만원 이상 줄었다. 전기 사용량이 30% 이상 감소한 덕분이다.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지붕이었다. 옥상을 밝은 색 차열페인트로 덮은 뒤 나타난 변화다. #. 서울 중랑구 망우동 나숙자(83세)씨 집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확인됐다. 나씨는 "7월 전기요금이 지난해보다 1만원 이상 덜 나왔다"고 했다. 옥상을 밝은 회색 차열페인트로 칠한 지 석 달여 만이다. ━차열페인트 칠한 지붕, 표면온도 8~11℃ 낮아━두 가구는 모두 서울시의 '쿨루프' 사업에 참여해 올해 봄 옥상 페인트를 새로 칠했다. '차가운 지붕'이라는 뜻의 쿨루프는 태양광을 잘 반사하고, 흡수한 열은 외부로 방출하는 도료를 지붕에 발라 건축물에 유입되는 열을 차단한다. 페인트 색상도 빛을 반사하는 밝은 색이 많다. 지난 10일 찾은 나숙자씨 집은 지어진 지 35년가량 된 주택이다. 옥상과 맞닿은 최상층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오래된 옥상 바닥에 금이 가 빗물이 새기도 했다.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키링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주식회사 잇잇. 4년 전 '병뚜껑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이하 다시봄)'에 입주했다. 이후 잇잇은 다시봄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과 교육·전시 콘텐츠를 개발했다. 외부 생산업체와 협업해 제품을 양산하는 경험도 쌓았다. 지난해에는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굿즈를 선보였다. 올해 4년간의 입주 기간을 마친 잇잇은 전북 지역의 다른 창업 보육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디어 단계의 예비 창업자가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해 이곳을 '졸업'한 첫 사례다. 이은주 다시봄 센터장은 지난 3일 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전주처럼 새활용 산업 기반이 크지 않은 지역에서도 아이디어를 가진 시민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기업 키우는 '인큐베이터'━다시봄은 업사이클링의 우리말인 '새활용'을 이름에 달고 2021년 6월 문을 열었다. 전주시 예산으로 민간법인이 위탁운영한다. 버려진 물건에 디자인과 새로운 쓰임을 더해 이전보다 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되살리는 활동의 지역 거점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대지 경계에서 불과 15m 떨어진 봉은사역 일대 지하에는 지름 2. 2m짜리 광역원수관 두 줄이 지나간다. 아직 정수 처리를 거치지 않은 한강 물의 통로다. 무역센터는 이 관로를 흐르는 물을 이용해 건물을 식히고 온수를 만든다. 무역센터로 들어온 한강 원수가 사무실 배관을 직접 도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자동 거름장치인 '오토스트레이너'가 원수 속 모래와 이물질을 걸러낸다. 이후 원수는 얇은 금속판을 여러 장 겹쳐 만든 판형 열교환기를 지난다. 금속판을 사이에 두고 한강 원수와 건물 내부 순환수가 섞이지 않은 채 열만 주고받는다. 열교환을 마친 원수는 환수관을 통해 다시 광역원수관으로 돌아간다. 무역센터가 구축한 이 시스템은 국내 도심 대형 건축물의 대표적인 수열에너지 활용 사례다. ━ 에어컨 7000대 맞먹는 '한강 물 냉방'━수열에너지는 물이 여름에는 바깥 공기보다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한 특성을 히트펌프를 활용, 냉난방에 이용하는 기술이다. 히트펌프 안의 냉매가 기체와 액체로 상태를 바꾸며 열을 흡수·방출해 물의 열을 필요한 곳으로 옮긴다.
지난 23일 경기 광명시 하안동 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1층 전시장. 흰 벽을 따라 실로 감싼 알록달록한 원형 조형물이 이어지고, 바닥에는 커다란 공처럼 생긴 작품들이 놓여 있다. ━다가서면 움직이는 폐자재…놀이가 된 자원순환━ 관람객이 다가가자 폐자재로 만든 고래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벽면의 대형 화면 앞에서는 재활용 캔만 골라 먹는 공룡이 돼 점수를 얻는 게임 '리플레이(RE:PLAY)'가 펼쳐진다. 작품의 재료는 버려진 실과 폐현수막, 인테리어 폐자재, 폐업한 식당이나 주방용품점에서 나온 스테인리스 식기 등이다. 지난 2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작가 6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업사이클 인터랙티브' 전시의 일부다. 전시는 제목처럼 작품을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지고 움직이며 자원순환의 의미를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센터 전시를 담당하는 지승현 광명시 자원순환과 주무관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단체 관람을 왔던 어린이들이 재미있었다며 부모님과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국내 첫 업사이클 아트센터…지역사회 '플랫폼'으로 진화━업사이클은 버려지는 물건에 디자인과 새로운 기능을 더해 이전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제품이나 작품으로 만드는 활동이다.
지난 10일 경기 군포시 부곡동 대야지하차도. 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도로 위로 검은색 태양광 패널이 약 380m에 걸쳐 이어졌다. 언뜻 보면 방음터널 위에 태양광 패널을 얹은 듯하지만, 이곳에서는 패널 자체가 터널의 천장을 이루는 방음판 역할을 한다. 기존 방음터널의 철제 골격은 그대로 남겨 두고 화재에 취약했던 천장 방음판만 철거한 뒤 차음과 화재 안전, 발전 기능을 모두 갖춘 태양광 일체형 방음판으로 교체했다. 기존 도시시설에 새로운 부지를 더하지 않고 전기를 생산하는 기능을 더한 것이다. 군포시 관계자는 "신설 방음터널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사례는 있었지만, 기존 터널의 틀을 활용해 방음판 자체를 태양광 일체형으로 바꾼 것은 전국 첫 사례"라고 말했다. ━화재 취약 방음판 교체하며 발전 기능까지━ 사업의 출발점은 2022년 12월 발생한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였다. 이후 정부가 화재에 취약한 방음판을 교체하도록 하면서 대야지하차도도 교체 대상에 포함됐다. 군포시는 당초 일반 방음판으로 교체할 계획이었다.
한강으로 흘러드는 고덕천 산책로와 대형 쇼핑몰 이케아 강동점 등이 입점해 활기를 띠는 고덕비즈밸리의 빌딩 숲 한쪽에 흰색 곡선형 외벽과 푸른 유리창을 두른 대형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만하게 휘어진 본관 위로는 전망대처럼 생긴 원통형 타워가 높게 솟아 있고, 건물 전면에는 긴 유리창과 테라스형 난간이 이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전시관이나 문화시설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이 건물은 강동구가 운영하는 복합 폐기물 처리시설인 '강동구 자원순환센터'다. 서울 여러 구 등 11개 기초지자체에서 발생한 음식물류 폐기물과 재활용품, 생활폐기물을 한곳에 모아 처리·선별·자원화한다. 그러나 지난 7일 찾은 센터에서는 흔히 떠올리는 '쓰레기 집하장'의 흔적을 외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어린이 대상 체험 교육, 11월까지 '마감'━ 건물 입구에 다가서자 '강동구 탄소중립 홍보체험관'이라는 표지가 방문객을 맞는다. 실내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벽면과 옷·가방·생활소품으로 재탄생한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치솟던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옥정호수스포츠센터 주차장. 이곳을 찾은 차량들은 야외 빈자리 대신 '차양막' 아래부터 차례로 들어섰다.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는 이 차양막의 정체는 바로 태양광 패널이다. 해가 강한 날에는 차양막이 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가림막 역할도 한다. ━무더위 속 그늘이자 발전소, 1석2조━ 이곳은 경기도의 '기후안심 그늘 프로젝트'가 구현된 현장이다. 이름 그대로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적응, 주민 생활 편익을 함께 겨냥한 사업이다. 주차장, 체육시설, 공공청사, 자전거길 같은 생활권 공간에 태양광 비가림막·차양막을 설치해 이용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공공시설에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공급한다. 경기도 12개 시·군에서 22개 사업이 총 8. 7메가와트(MW) 규모로 추진된다. 경기도가 특별조정교부금 202억원을 투입한다. 양주시 옥정동에 위치한 옥정호수스포츠센터 주차장 태양광은 이 경기도 사업 중 가장 먼저 완성된 사례다. 경기도 특별조정교부금 3억5600만원을 투입해 설치 용량 약 120킬로와트(kW) 규모의 주차장 태양광을 설치했다.
글로벌 공급망 전반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 요구가 확산되며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둔 국내 중소·중견 협력사에게도 온실가스 감축은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됐다. 광주광역시(이하 광주시)가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이 아닌 지역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탄소 감축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한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광주시는 온실가스 배출 규모 상 배출권거래제 규제 대상이 아닌 중소·중견기업들이 스스로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배출권 모의거래까지 경험하도록 설계한 '기업탄소액션'을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를 전국 지자체 최초의 기업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사업으로 부른다. ━ 사각지대 놓인 중소기업, 탄소 시장 '예행연습' ━기업탄소액션은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 중소기업들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관리 체계를 갖추도록 돕는 광주시의 제도다. 사업 기간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총 7년이다. 참여 대상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나 목표관리제 대상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이며, 올해 기준 32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세계자연기금(WWF)의 기후변화 대응 평가에서 한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글로벌 본선에 진출하고, 글로벌 기후에너지시장협약(GCoM) 최고등급을 2년 연속 받은 전라남도 여수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유화학 국가산단을 품은 산업도시가 국내 기후변화 대응 선도 도시로 주목받는 배경에는 지역 구성원들이 10년 넘게 이어온 '기후변화대응 민관산학 협의체'가 있다. 지난 17일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에 위치한 여수시 탄소중립센터에서 협의체 이행평가 실무를 총괄해 온 문영수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와 여수시 기후생태과의 한성진 COP33 유치팀장을 만나 협의체의 운영 방식과 10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을 들었다. ━시행착오 거치며 찾은 답은 '자율성'━여수시 기후변화대응 민관산학 협의체의 모체는 2013년 민·관·산·학이 함께 수립한 '온실가스 자율저감 지역행동계획'이다. 탄소 감축 사업이 계획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그 결과를 다음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꾸려진 조직이다. 2023년 '기후변화대응 민관산학 협의체'로 개편됐다.
실내 어린이 암벽 체험 코스, 긴 미끄럼틀 '어드벤처 슬라이드', 탁 트인 통창 너머로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와 카페. 영락없는 복합 문화공간 같은 이 공간의 정체는 하루 200톤의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 '쓰레기 소각장'이다. ━폐기물 처리시설로 나들이…전망대·놀이시설 '인기' ━2025년 12월 준공식을 마친 충청남도 서산시 양대동의 '서산시 광역 자원회수시설'은 환경기초시설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정면으로 깨뜨리고 있다. 서산·당진시에서 발생하는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폐기물을 소각하는 장소인 동시에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자리매김 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찾은 이곳은 평일 오후임에도 가족·친구들과 삼삼오오 전망대와 체험시설을 둘러보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7세·4세 두 자녀와 함께 전망대를 찾은 서산시민 박소리씨(33세)는 "SNS에서 보고 알게 돼 처음 오게 됐다"며 "입장료와 음료값도 저렴한 데다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함께 시간 보내기에 매우 좋다"고 만족해했다.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주택단지. 멀리서 보면 일반 아파트 보다 높이가 다소 낮은 주택단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남다른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붕과 북측을 제외한 3면 외벽에 태양광 패널이 부착된 이곳은 지난 2017년 11월 완공된 국내 최초 '제로에너지' 주택 실증단지 '노원 에너지제로 주택(EZ House)'이다. 노원구가 2012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이후 국토교통부 연구개발 공모사업을 통해 노원구·서울시·명지대 산학협력단 컨소시엄 주도로 진행됐다. KCC건설 등이 참여해 단지 건설로 이어졌다. 난방, 냉방, 온수, 환기, 조명 등 5대 에너지 기준 연간 1차 에너지 소비량과 생산량의 합이 '제로'가 되는 주택단지 구현이 실증의 목표였다. 단지 내에서 생산하는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단지 운영을 담당하는 노원환경재단의 장하경 환경사업부장은 "단지 안에서 화석연료를 전혀 태우지 않고,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보온병' 같은 주택단지━핵심은 에너지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꽉 막아주는 이른바 '패시브(Passive)' 설계에 있다.
30℃ 넘는 무더위가 5월부터 찾아오며 올해도 '현실이 된 기후위기'가 일상을 타격했다. 폭염·열대야·극한 강수 등 기후변화로 초래된 위기가 건강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위험의 크기와 빈도 역시 해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이상기후 늘며 폭염→건강 피해 급증━정부가 전국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의 참여로 파악한 온열질환자의 수는 지난해 4460명으로 이 조사가 시작된 2011년 443명에서 10배로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로 파악 된 환자 수 보다 실제 온열질환자 수가 상당히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기후재해가 모두에게 고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재해를 대응하는 데 고려해야 할 중요한 특성이다. 기후재해 피해는 날씨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작업 환경에 있거나 고령층에게 더 크게 집중된다. 온열질환자 중 30%가 65세 이상이었고, 발생 위치로 보면 실외 작업장(32. 1%)이나 논밭(12. 2%) 등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도가 선보인 '기후보험'은 기후위기 적응 대책의 새로운 정책 모델로 주목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