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더 어려워진다"...'납품대금 정산 단축' 추진에 업계 반발

유엄식 기자
2026.09.02 17:12

직매입 대금 지급기한 60일에서 35일로 단축 시 현금 2배로 묶여
쿠팡, 컬리 외에도 다이소 등 오프라인 유통사도 영향...글로벌 기준과도 역행

티몬·위메프(이타 티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진 2024년 7월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환불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정치권에서 직매입 유통업체의 납품대금 지급 기한을 대폭 단축하는 입법안이 추진되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소 납품사가 신속하게 대금을 받을 수 있는 법 취지와 달리 유통사의 현금 흐름이 악화돼 매입 규모가 축소되고 반품이 늘어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판로를 저해하는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는 유통업체의 직매입 대금 지급기한을 상품수령일로부터 최대 60일에서 35일로 단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규모유통업법을 통과시켰다.

개정안 적용 대상은 매출 1000억원 이상 유통업체다. 현재 납품대금 정산 기한이 35일 이상으로 알려진 쿠팡과 컬리 외에도 다이소,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전자랜드를 비롯해 TV홈쇼핑 업체도 상당 수 포함될 전망이다.

현재 직매입 중심 대형 유통사들은 물건이 팔리기 전에 미리 대량 매입하고 판매 여부에 관계 없이 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산 주기가 단축되면 앞으로 유통사는 짧게는 3~6개월, 길게는 1년 안에 팔릴 물건을 매입한 뒤 한달 안에 납품업자에게 대금을 줘야 한다.

하지만 이 법은 취지와 달리 유통사 자금 운영을 어렵게 해서 결과적으로 중소 납품사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금 정산기한을 60일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이면, 유통업체는 물건이 팔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기존보다 2배 많은 현금을 묶어둬야 한다"며 "회전율이 높아 1주 단위로 물건을 팔고 발주하는 대기업 인기 브랜드만 살아남고, 매입 예산 부족에 회전율이 느린 시즌 상품, 중소기업 및 신생업체 제품이 퇴출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법 개정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유럽연합(EU)에선 2023년 정산기한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이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 등에서 "중소기업을 죽이고 대기업하고만 거래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반발이 나오자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정산기한 단축 시 유럽 유통사에서 부족한 현금을 벌충하기 위해 연간 100억~150억 유로가 필요할 것이란 조사 결과도 나왔다.

현재 EU는 대금지급 지연 규정(Late Payment)을 통해 납품사와 합의시 정산주기를 60일 또는 재고 보유기간이 60일이 넘거나 회전율이 넘는 계절상품은 120일까지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또 미국 아마존과 월마트(최대 90일), 코스트코·베스트바이(최대 60일), 중국 최대 유통기업인 다룬파와 우마트(90~120일), 일본 이온그룹·세븐앤아이(최대 60일) 등 선진국 유통기업들도 정산주기를 일률적으로 단축하지 않는다. 납품업체와 약속한 대금지금을 위한 현금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실제 판매 시점 등을 감안해 정산주기를 수시로 조정하기 위해서다.

국가별 직매입 정산주기 현황 및 글로벌 유통기업 직매입 정산주기/그래픽=윤선정

학계에서도 정산주기 강화에 따라 유통업체들의 대기업 쏠림현상이 심해지고, 중소기업들은 퇴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서울대 유병준 경영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이커머스 정산주기를 60일에서 20일로 축소하면 입점업체와 소비자 후생, 직매입 플랫폼 등에 47조7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정산주기 단축시 1년 후 유통사와 거래를 유지하는 입점업체 비율은 74%로 떨어지고, 중소업체 시장 피해액은 연간 최대 21조로 추산된다.

이와 함께 업체들이 규제를 피하고자 미판매 상품을 업체에게 반품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유통사 입장에서 리스크가 큰 직매입 거래 대신 실제 판매된 상품에 대한 대금을 받는 '특약매입'이나 '위수탁' 계약에 업체들이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부작용을 고려해 보다 세밀한 법안 심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 납품사 단체들도 이번 법안에 우려를 나타낸다. 약 1500여개 중소 회원사를 둔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금 지급기한 단축 강제는 유통업자 발주량 감소로 직결돼 납품업체 매출 급감을 야기한다"며 "현장 납품업체와의 충분한 소통 없는 규제 강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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