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재 만능주의, 기업 혁신과 도전 막는다

머니투데이
2026.09.07 04:05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이억원 금융위원장(왼쪽)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정무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화하고 있다. 2026.9.3/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정부가 규제 완화와 신산업 육성을 외치지만 행정 현장은 정반대로 가는 양상이다. 부처마다 경쟁하듯 쏟아내는 '역대 최대' 과징금과 제재가 기업의 숨통을 죈다. 말과 행동의 엇박자는 기업의 혁신과 도전 의지를 가로막는 효과를 낳는다.

엄벌은 전방위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7월까지 식품업체에 매긴 과징금만 1조3500억 원을 넘어섰다. 쿠팡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과 세무조사로 1조원대의 부담을 떠안는 등 플랫폼·유통업계 옥죄기도 거세다. 은행권이 피해 계좌 97%와 자율배상을 마쳤는데도 밀어붙인 6000억 원대 ELS 과징금에 이르기까지 경계가 없다.

위법의 경중을 떠나 '일단 때리고 보자'는 식의 행정은 그만큼 부작용을 낳는다. 검색 알고리즘 제재로 6년째 소송에 갇힌 네이버나 카카오모빌리티 등 안방 플랫폼이 발목 잡혀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이 글로벌 빅테크는 국내 영토를 거침없이 넓혔다. 실질 피해 산정도 못한 LTV 정보 교환 제재(2720억 원) 등 금융권 압박 역시 여신 공급 축소로 이어져 결국 혁신 벤처와 소상공인의 돈줄을 끊는 자충수가 됐다.

사후 제재의 기준이 모호할수록 기업은 투자를 멈추고 자원을 사법 방어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기업들로서도 존립이 걸린 거액의 과징금을 그대로 수용했다간 주주들의 배임 소송에 직면하기에 법정행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리한 제재가 결국 행정의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다.

실제로 당국의 성급한 처분은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렸다. 국세청이 대형 조세 소송에서 줄패소했고 공정위 역시 퀄컴이나 남양유업 등으로부터 제소당해 법원에서 잇단 취소 판결을 받았다. 당국이 최근 9년간 패소 등을 통해 기업에 돌려준 과징금만 6250억 원, 여기에 얹어준 이자(환급가산금)만 474억 원에 달한다.

패소하면 혈세를 낭비하고 징수하더라도 소비자 피해 구제 없이 국고만 채우는 과징금 만능주의는 수명을 다했다. 공정거래·개인정보 분야부터 미국 FTC의 동의의결이나 EU의 시정확약제처럼 기업의 자발적 시정과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유도하는 합의형 종결제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금융·세무 부문도 시장의 실질적 정상화와 소비자 보호를 중심에 두는 책임행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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