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27일 고리 원전 3·4호기의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설계수명 만료로 각각 2024년과 2025년 가동을 멈춘 두 원전은 설비 개선과 정기검사를 거쳐 내년 상반기 순차 재가동을 목표로 한다. 멈춰 있던 발전설비를 다시 활용할 길이 열린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기존 원전을 다시 돌리는 것만으로 미래 전력 공급의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니다.
같은 날 인천 송도에서 열린 IAEA 원자력 장관회의에서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영상 환영사를 통해 원자력에 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이 확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IAEA는 2050년 세계 원전 설비용량이 보수적 전망에서도 640GW를 넘고 낙관적 전망에서는 1000GW 이상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로시 총장은 실제 확대 여부는 현장의 사업 추진 성과에 달렸다고 했다.
이 맥락에서 나머지 원전 7기의 계속운전 심사도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되 조속히 결론을 내야 한다. 심사와 설비 개선이 뒤늦어 가동 공백이 길어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필요한 자료와 보완 조치를 미리 준비하고 원안위도 예측 가능한 일정에 따라 심사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을 키우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공장과 서버를 가동할 전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해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수적이다.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려면 전력을 제때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신규 원전도 속도를 내야 한다. 10월을 목표로 했던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 마련은 공론화 이후로 넘어갔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원전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9.5%, 당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은 69.6%였다. 무엇을 더 확인해야 전력계획을 확정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고리 3·4호기의 계속운전 허가 기간은 각각 2034년과 2035년까지다. 기존 원전의 재가동은 시간을 벌어줄 뿐 그 이후의 공급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원전을 얼마나 확보하고 언제 가동할지는 전력수요와 비용, 송전망 여건을 종합해 정부가 판단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고 실행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