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광역특구법(옛 메가특구법)' 추진 과정에서 재계 숙원인 주 52시간 근로시간 예외 특례의 도입이 지연될 조짐이다. 이 법안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 정권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지원 내용을 담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 "기존 제도의 시행령을 수정하거나 절차를 쉽게 하는 방안이 있는지 논의해 보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극렬히 반대하는데"라는 언급에서 엿보이듯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한 발 물러선 기색이다.
업계는 근로시간 연장 시 행정절차의 번거로움을 걱정한다.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려면 근로자 개별 동의서는 물론이고, 연장 사유 소명과 건강보호 계획 등을 일일이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시간"이라는 산업통상부 장관의 발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분초를 다투는 반도체 무한경쟁 속에서 적잖은 부담이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의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지만 이 역시 인가에 여러 단계 절차가 필요하다.
정부·여당은 어정쩡한 '양다리 법안'의 경우처럼 노동계와 산업계 사이에서 눈치를 보다가 혼란을 자초해 왔다. 민주당은 지난주 근로시간 연장 특례 조항을 넣은 법안과 넣지 않은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는 희한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 직후에는 '더 쉬운 절차'를 찾아 보라는 대통령 한마디에 방침을 바꿨다. 이미 발의한 법안들을 어찌 할지 난감하게 됐다.
대규모 산업단지를 신속하게 짓고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서둘러도 주 52시간이라는 굴레에 핵심 두뇌가 묶인다면 골든타임을 잡기 어렵다. 현 정권이 반도체 패권 경쟁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추진 현장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반도체 전격전' 구호는 공허해질 뿐이다. 오히려 '화이트칼러 이그젬션' 같은 고소득·전문직 R&D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는 특구를 넘어서 각지로 확대해야 한다.
당정은 모호한 양다리 해법이나 사회적 대화 뒤에 숨지 말고 노동계 설득에 손수 나서야 한다. 초과근로에 따르는 노동계 불안은 충분한 보상과 철저한 건강권 보호라는 원칙에 기반해 타협점을 찾을 일이다. '속도전'을 원한다면 기업들에게 실제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