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 시장의 공포를 이기는 방법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입력 2026.11.06 05:30 수정 2026.11.06 05:30

[오동희의 思見(사견)]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 코스피가 크게 하락하며 장중 한때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던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5%이상 하락한 5,395.58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장중 7% 넘게 하락한 202,000원에, SK하이닉스는 9%넘게 하락한 1,267,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2026.11.5/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광호 기자

3일(현지시간) 미국 중간선거 이후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민주당의 대승, 이른바 '블루 쓰나미'의 불똥이 5일 한국 반도체 기업으로 튀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에 적극적이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AI 데이터센터(AIDC)의 급격한 증설을 규제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선거의 후폭풍은 미국과 한국 증시에도 퍼졌다. 미 증시가 안도감으로 대폭 상승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인텔 주가가 52년 만에 최대폭인 28.58% 폭락한 데 이어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AI 거품론'에 대한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공포를 이기는 법은 공포의 대상을 정확히 알고 그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과거 인류가 태양신을 섬기고 일식과 월식, 혜성의 출현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도 자연현상의 원리를 알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이를 하늘의 분노라고 여겼던 일식과 월식이 천체의 운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인류는 막연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AI 시대를 바라보는 공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천조원 단위의 AI 투자가 과열로 그 거품이 붕괴되면 세계 경제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전자는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후자는 분석 가능한 영역이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 이후 AI 시장이 주목하는 변수는 텍사스 등 데이터센터를 집중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미국 신규 AIDC 건설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텍사스를 비롯해, 조지아주 등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나 히노호사 주지사 당선자는 전력과 물 부족, 주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돼 데이터센터 건설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우려를 가볍게 볼 것은 아니다. AIDC 건설이 지연되면 GPU(그래픽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도 단기적인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텍사스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된다고 미국의 AI 인프라 투자가 멈출까.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반도체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등의 수출을 규제하면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본격화했다. 정부가 바뀌면서 기조변화를 기대했으나 이후 바이든 행정부로 바뀐 뒤에도 대중국 반도체 규제의 큰 틀은 유지됐다. 반도체가 단순한 산업을 넘어 세계 패권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기 때문이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도 다르지 않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이유도 AI 연산 능력이 국가 안보와 기술 패권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학습에서 추론으로 AI 시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핵심 전략자산은 컴퓨트(Compute), 즉 연산 능력이다. 미국이 AIDC 건설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울=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동시에 탈환했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함께 뒤집은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년 이후 20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후반 2년을 여소야대 의회와 마주하게 됐다.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텍사스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어려워지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다른 지역을 대안으로 찾을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AI 인프라 개발을 위해 아이다호국립연구소 등 연방 소유 부지 4곳을 후보지로 선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선택지가 텍사스나 조지아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국가의 전략적 필요성이 민간 기업의 투자 수익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빅테크 기업들도 투자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부품공급업체들이 수요기업에 투자비용을 빌려주는 '순환투자' 등 투자부담으로 AI 투자 거품론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방향이다. 주요 기업들은 내년에도 AI 인프라에 1조달러 이상을 쏟아붓는 등 막대한 자본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S&P 글로벌 레이팅스에 따르면 알파벳·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내년 합산 AI 인프라 투자 규모는 2027년 1조3000억 달러(약 1780조 원 이상)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 규모가 커지는 만큼 수익성 검증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투자를 멈추기는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계속되는 한 AI 컴퓨트 확보는 기업 경쟁력과 국가의 명운과 직결되는 문제다.

컴퓨트 경쟁의 확대는 메모리 반도체에도 기회다. AI 학습뿐 아니라 추론 과정에서도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HBM과 서버용 D램 등 메모리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인류의 진화는 메모리를 더 많이 쓰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그 중간중간 거품이 끼는 구간도 있지만 시간 축(X축)이 길어질수록 수요 축(Y축)이 위를 향하는 '우상향' 곡선의 형태를 띄어왔다.

일식과 월식이 찾아온다고 태양과 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체의 운행 원리를 알면 어둠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있다. AI 반도체 시장도 마찬가지다. 겨울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겨울 뒤에는 봄이 온다는 사실은 우주의 원리다.

공포를 이기는 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산업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시장의 공포에 휩쓸리기보다 변화의 본질을 읽어야 한다. 동굴 속에 숨어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 어둠이 지나간 뒤 무엇이 달라질지 내다보는 인류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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