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에 불길과 함께 흉기 난동이 벌어졌다. 자신의 방에 불을 지른 정상진(당시 30세)은 연기를 피해 복도로 나온 거주자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조용했던 고시원은 순식간에 참혹한 현장으로 변했다.
정씨의 범행으로 6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는 밀린 월세와 벌금, 휴대전화 요금 등을 감당하지 못하자 처지를 비관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된 정씨는 현재까지 미집행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 계속되는 생활고…4년간 계획 후 범행
1978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정씨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학창 시절 괴롭힘까지 당해 중학생 때는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단란주점 종업원과 다단계 업체 직원으로 일했다. 군 전역한 뒤에는 서울로 거처를 옮겨 오토바이 배달원, 주차요원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정씨는 2003년 9월부터 월세 17만원짜리 1평 남짓한 고시원에 살았다. 방 한 칸에서 생활하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시원에 불을 질러 거주자들을 살해한 뒤 경찰에 사살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후 약 4년에 걸쳐 가스총과 회칼, 과도 등 범행에 사용할 흉기를 사 모았다.
범행을 실행에 옮긴 직접적인 계기는 밀린 돈과 경찰 조사에 대한 압박이었다. 정씨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향토예비군 설치법 위반으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납부하지 않아 수배된 상태였다.
여기에 한 달 치 월세 17만원과 휴대전화 미납 요금 60만원, 하지정맥류 수술비 300만원 등도 필요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둔 상태라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불이야!" 대피하는 사람들 찔렀다…사상자 13명
범행 당일은 밀린 고시원 월세를 내기로 한 날이자 경찰 조사를 받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그는 8시15분쯤 자신이 머물던 3층 방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이후 검은색 옷을 입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게 고글과 마스크, 등산용 헤드랜턴을 착용한 채 방을 나섰다. 허리에는 가스총을 차고 손에는 길이 약 50㎝의 회칼을 들었다. 예비 흉기 2점은 양쪽 발목에 숨겨 찼다.
화재에 놀란 거주자들이 복도로 뛰쳐나오자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있던 정씨는 이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두르며 복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연기로 가득 찬 좁은 복도에서 무방비 상태였던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할 때까지 30분 넘게 지옥이 펼쳐졌다.
정씨의 범행으로 5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다른 피해자 1명은 공격과 불길을 피해 3층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 밖에 7명이 다쳤다.
사상자 13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가족 몰래 학비를 벌던 대학생부터 건강 문제로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던 40대,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하던 50대 중국인까지 희생자들의 사연은 다양했다.
"세상이 날 무시" 일기장에 남긴 원망…범행 각오도
정씨는 범행 후 고시원 4층 창고에 숨어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구조 과정에서 정씨의 옷차림 등을 수상하게 여겨 용의자로 특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해 심적 고통이 커 자살까지 생각했다"며 "고시원 월세와 벌금, 휴대전화 요금 낼 돈도 없어 '이렇게 살면 뭐 하나' 하는 생각에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그의 방에서는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이 담긴 일기장 4권이 발견됐다. 일기장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몸과 두뇌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난다. 아무 가치가 없다",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힌다" 등 자책이 담겼다.
또 "조국은 날 버렸다. 이젠 필사의 항쟁뿐이다", "없는 자는 잃을 게 없다. 마지막을 멋지게 끝내자", "고시원이 안전하다고 생각해 마음 놓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 확실히 보여줘야겠다" 등 사회에 대한 원망과 범행 각오도 적혀 있었다.
1심서 '사형', 항소 안 해 확정…사형수로 복역 중
정씨는 현주건조물방화죄와 방화치사죄, 살인죄 등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는 우울증에 따른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1심 재판부는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아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정씨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사형 판결은 확정됐다. 우리나라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1997년 12월 이후 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현재 정씨는 미집행 사형수 52명 중 한 명으로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