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노동자에서 식당 사장님으로"…외국인 상권 '탄생 공식'

박진호 기자, 민수정 기자, 이현수 기자, 고지운 기자, 나유영 기자, 인천=신홍규 기자, 안산(경기)=여승헌 기자
입력 2026.11.07 07:30 수정 2026.11.07 07:50

[MT리포트]사장님이 된 외국인③ 외국인 상권 탄생·성장 공식…'코리안 드림' 찾아온 외국인

[편집자주] 한국에 '외국인 사장님'이 늘고 있다. 같은 국적 이주민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한 외국인 자영업자들은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단지와 주택가, 도심 등 상권이 형성된 배경과 모습도 다양하다. 하지만 관련 통계나 지원 정책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외국인 자영업자들이 바꿔놓은 지역 상권의 모습과 창업·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 정책적 과제를 짚어봤다.
지난 8일 경기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거리 모습. 이국적인 과일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여승헌 기자.

전국 곳곳에 형성된 외국인 상권은 탄생 배경도 제각각이다. 산업단지 일자리를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되거나, 가족 단위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곳도 있다. 도심의 교통 접근성과 외국인 상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자영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개인사업자 신용카드 가맹점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 안산으로 지난해 6월 기준 450개소(4.4%)로 집계됐다.

뒤이어 △경기 수원 395개소(3.8%) △서울 영등포구 358개소(3.5%) △경기 시흥 354개소(3.4%) △경기 부천 353개소(3.4%) 순이었다. 신한카드에 등록된 외국인 개인사업자 가맹점 1만323개를 분석한 결과다.

외국인 상권은 대체로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외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고향 음식과 생활용품을 찾는 수요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인들이 직접 가게를 열면서 상권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경기 안산 원곡동은 산업단지 일자리가 상권 형성의 출발점이 된 대표적인 지역이다. 인근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등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식당과 식료품점 등이 하나둘 들어섰다.

원곡동 다문화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네팔 출신 아건씨(52)도 공장 노동자에서 식당 사장님이 됐다. 아건씨는 당초 한국에서 잠시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한국에 귀화한 같은 고향 출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정착했다. 그는 "2004년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서 일하다 2022년 직접 네팔 음식점을 차렸다"며 "한국에 사는 네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정책적 지원도 안산 외국인 상권 성장의 배경이 됐다. 안산시는 2009년 원곡동 일대를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했다. 2024년 6월 기준 특구 인구 1만9965명 가운데 등록외국인과 외국국적동포는 1만7806명으로 89.2%에 달한다. 특구에서는 외국인 조리사 고용 추천서 발급과 다문화 음식거리 활성화, 차 없는 거리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구 지정 기간은 2027년까지 연장됐다.

공장 옆에서, 주택가에서…커지는 외국인상권

지난 8일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대한고려인협회 모습. /사진=신홍규 기자.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은 원곡동과 달리 주거지를 중심으로 상권이 성장한 곳이다. 고려인 등 러시아어권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정착하면서 주택가에 음식점과 식료품점, 미용실 등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민씨(29)는 먼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형을 따라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형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부산에서 식당을 열었고, 나는 어학당에 다니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식당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대표 외국인상권으로 자리잡은 광주 광산구 월곡동은 고려인들의 집단 정착과 지원 공동체가 맞물려 성장했다. 이곳은 2000년대 초 고려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음식점과 생활 상점이 늘었다. 이후 이주민들의 정착을 돕는 상담소와 교육·문화시설 등이 자리 잡으면서 주거와 소비, 공동체 활동이 결합한 생활권으로 발전했다.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는 외국인 상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심형 상권이다. 과거 동대문 일대에서 사업하던 중앙아시아 출신 상인들이 자리 잡으면서 음식점과 식료품점 등이 들어섰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들이 모여들면서 상권이 확대됐다. 동대문 일대의 높은 교통 접근성도 상권 성장의 배경이 됐다.

이곳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사토르아가씨(62)는 "우즈베키스탄에서 1997년 사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앙고라 양말 판매부터 식당, 중앙아시아 택배 사업까지 여러 업종을 거쳐 지금의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생계 위해, 꿈 찾아"…한국에서 '사장님'된 이유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사장님'이 된 이유도 저마다 달랐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고향 음식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각자의 꿈을 안고 한국에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모노씨(56)는 "고향에서도 주방장으로 일했다"며 "한국에 와보니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많은데 고향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어 직접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 국적 박춘월씨(61)는 "식당과 건설 현장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하며 돈을 모았다"며 "언젠가 가게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다 2016년 식당을 열었다"고 말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가 사장님이 된 사례도 있다. 튀르키예 출신 바를라스씨(24)는 대학 재학 중 등록금이 부족해 휴학한 뒤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창업 자금을 모았다. 현재 서울에서 7개월째 케밥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 이주민의 특성과 정착 배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외국인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 한국이민학회장(전북대 사회학과 교수)은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식당이나 식료품점 등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며 "이민자가 늘어날 때의 상권 형성 과정은 지역마다 다르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앞으로 이런 외국인 상권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상권의 성격은 주민들의 특성이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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