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렇게 말 잘듣는 언니가 어딨냐" 정수빈 일침→곧바로 우승, '패패패승승승승' 7년 기다린 김보미의 감격 우승 [PBA 투어]

안호근 기자
2026.10.26 11:31
김보미가 25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LPBA 결승전에서 임정숙을 세트스코어 4-3으로 꺾고 프로 데뷔 7년 4개월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세 세트를 먼저 내주며 패배 위기에 몰렸으나 4세트부터 내리 네 세트를 따내는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 상금 4000만 원을 획득했다. 우승 직후 김보미는 지난 대회 우승자이자 팀 동료인 정수빈의 독려가 큰 자극이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보미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하고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야! 이렇게 말 잘 듣는 언니가 어딨냐."

이번 대회 내내 김보미(27)의 선전 때마다 팀 동료 정수빈(26·NH농협카드)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지난 대회 우승 후 김보미를 향해 "언니 잘 좀 해봐"라고 일침을 날렸고 그 효과인지 곧바로 우승까지 이뤄냈다. 김보미도 우승 후 정수빈을 향핸 애정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김보미는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임정숙(크라운해태)과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4-3(4-11, 10-11, 4-11, 11-9, 11-8, 11-2, 9-5)로 대역전 우승을 이뤘다.

2019-2020시즌 프로당구 출범과 동시에 프로에 데뷔한 김보미는 이번 우승으로 7년 4개월(63번째 투어) 만에 감격의 우승을 맛봤다. 그간 세 차례 결승전에 올랐으나 번번이 고배를 들었던 김보미는 3전 4기만에 프로당구 19번째 '퀸'이 됐다. 우승상금 4000만원과 2만 점의 랭킹포인트를 더한 김보미는 종전 시즌 랭킹 24위에서 단숨에 3위(2만 3800포인트)로 뛰어올랐다.

결승전 경기 초반에는 임정숙이 기선을 잡았다. 후공으로 시작한 임정숙은 1세트를 4이닝 만에 끝냈다. 2세트에선 2-10으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5이닝 하이런 6점에 이어 7이닝에서 남은 3점을 뽑아내며 역전승을 따냈다. 기세가 완전히 임정숙에게 넘어갔고 3세트마저도 가져갔다.

김보미(오른쪽)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득점 길을 구상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모두가 김보미의 패배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0-4로 허무하게 끝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게 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보미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1이닝 만에 6점을 몰아친 김보미는 6-8로 역전을 허용했으나 곧바로 동점을 이룬 뒤 6이닝에서 한 세트를 만회했다. 5세트에서도 8이닝 접전 끝에 11-8로 승리했다.

6세트도 김보미의 판이었다. 첫 이닝 하이런 9점을 터트린 김보미는 5이닝에서 뱅크샷으로 남은 2득점을 채웠고 승부는 마지막 7세트로 향했다.

이번에도 1이닝부터 4점을 쓸어 담은 김보미는 임정숙의 추격에도 4이닝 2득점 이후 이닝 마다 1득점씩 쌓아 올리며 결국 7이닝에서 9-5로 마무리하고 큐를 들어올리며 울컥했다.

우승 직후 마이크를 잡은 김보미는 스폰서들과 팀 동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더니 정수빈을 찾았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지내던 정수빈은 우연히 당구를 접한 뒤 급성장하며 프로에 데뷔했고 지난 대회 우승까지 이뤘다. 늘 우승 후보로 불리지만 매번 아쉬운 결과를 낸 김보미에게 "언니 잘 좀 해봐"라고 말한 이유였다. 그리고는 "다음 대회는 보미 언니가 우승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예언을 했는데 그게 곧바로 이뤄진 것이다.

"정수빈, 야"라고 부르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시상식 직전 지난 대회 우승 후 정수빈의 인터뷰 내용을 보여줘 둘의 특별한 스토리가 관중들 머릿속에 각인된 터였다. 김보미는 "이렇게 말 잘 듣는 언니가 어딨냐"라고 덧붙였다. 정수빈의 우승 주문을 곧바로 이뤄냈다는 뜻이었다. 관중석에서 제 일처럼 기뻐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정수빈도 미소를 지었다. 김보미는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정말 배울 점이 많다. 너무 어른스럽고 예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김보미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짓는 득점을 한 뒤 큐를 들어올리며 울컥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김보미는 우승 직후 "이전에는 당구 선수를 하면 당구를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당구가 너무 싫은 적도 있었다. 연습할 때 정말 힘들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번 우승이 내가 지금까지 훈련하고 해왔던 것들이 보상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승자 기자회견에서도 김보미는 지난 대회 정수빈의 발언에 대해 "느껴보지 못한 자극이었다"며 "3차 투어(에스와이 챔피언십)에서 박정현(하림) 선수가, 4차 투어(크라운해태 챔피언십)에선 정수빈 선수까지 나보다 어리고 경력이 짧은 선수들이 우승하는 걸 자극이 됐다. 경기도 많이 챙겨봤다"고 남다른 자극제가 됐다고 밝혔다.

"너무 정신이 없고, 꿈만 같다. 속이 시원하다"고 우승 소감을 밝힌 김보미는 역전승 비결에 대해선 "0-4로 지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니 한 세트만이라도 이기자는 생각이었다. 한 세트만 가져가면 내 당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마인드컨트롤을 최대한 하면서 경기를 풀어갔다"고 전했다.

커리어가 증명하듯 우승의 기회는 많았다. 중요 문턱마다 넘어졌고 동료들은 제 일처럼 아쉬워했다. 지난 날을 돌아본 보미는 "돌이켜보면 결국 실력이 부족했다고 느낀다. 강한 멘탈을 가진 선수라도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는 떨리기 나름"이라며 "그걸 이겨내야 우승을 할 수 있다. 멘탈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과거의 나는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김보미(앞줄 가운데)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수빈(윗줄 왼쪽 끝)도 환한 미소로 축하를 보내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김보미의 커리어를 바꿔놓을 크나 큰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김보미는 "당연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당구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당구 선수를 하면 당구를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당구가 너무 싫은 적도 있었다. 연습할 때 정말 힘들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면서도 "하지만 주변에 선수인데도 당구를 즐기면서 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처럼 당구를 즐기면서 치자고 생각했다. 이번 우승이 내가 지금까지 훈련하고 해왔던 것들이 보상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보미를 응원하던 모든 동료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아쉽게 패한 임정숙마저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임정숙은 "준우승까지 달성해서 기쁘면서도 정말 아쉽다. 코 앞까지 다가온 우승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도 "하지만 상대가 김보미 선수라서 아쉬움을 빨리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보미 선수와는 팀리그 첫 시즌인 2020-2021시즌 SK렌터카에서 같이 뛰었다. 사실 정말 힘든 때였다"며 "공에 대해 잘 모를 때기도 했고, 팀원들에게 질책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김보미 선수와 서로 의지를 했고 힘이 됐던 사이다. 김보미 선수의 우승을 누구보다 바랬다.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아버지 김병호(53·하나카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우승 직후 전한 소감에서 아버지 김병호를 가장 뒤로 미뤄뒀고 '부녀 우승자'라는 최초의 기록을 쓴 두 부녀는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과거 대구에서 올라와 힘겹게 서울살이에 적응해야 했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김보미는 "당구 하나만 바라보고 대구에서 많은 걸 포기하고 서울에 왔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때의 기억이 지나가서 울컥했다"고 전했다.

김보미(아래)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한 뒤 관중석의 아버지 김병호와 함께 감격을 나누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이어 "아버지도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당구를 싫어하는 딸을 억지로 시키려 했으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한 만큼 잘 못 따른 것 같다.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하면 일찍 우승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하셨을 것 같다"며 "옛날에는 아버지께서 모지게 말을 하시기도 하셨지만 최근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존중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잔소리는 하시지만 나를 믿어준다는 게 느껴진다. '하던 대로 해라'고도 하신다. 아버지께서도 모진 말을 참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당구를 치면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말을 안 하기도 했다고. 그럼에도 포기할 순 없었다. 김보미는 "연습하고 훈련하는 건 싫었지만 또 경기는 재밌었다"며 "또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아마추어 시절에는 여자 선수가 많지 않아서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당구를 계속 잡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아버지로 인해 시작한 당구로 최고의 순간까지 맛봤다. "옛날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지만, 지금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최근에 먼저 전화를 하셔서 나에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직접 잡아주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셨다"며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정말 예전에는 화를 많이 내고 엄하게 가르치셨다. 아버지께서 그 말을 하셨을 때 아버지를 믿고 다시 레슨을 받았다. 그래도 살짝 짜증을 내신 적은 있다"고 웃었다.

대회 한 경기에서 가장 높은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컴톱랭킹'(200만원)은 64강에서 애버리지 2.273을 기록한 한슬기(하나카드)가 차지했다.

한편 대회 마지막날인 26일에는 PBA 4강전과 결승전이 열린다. 오후 12시 30분 이상대(우리금융캐피탈)와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웰컴저축은행)의 4강전 제1경기에 이어 오후 3시 30분 조건휘(웰컴저축은행)와 안토니오 몬테스(스페인·브레이커스)의 4강전 제2경기가 진행된다. 4강전에서 승리한 선수는 오후 9시 우승 상금 1억원을 놓고 결승전에서 대결한다.

김보미가 25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6-2027시즌 5차 투어 '지금 잘 사는 방법 zgm NH농협카드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전에서 승리, 우승을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지으며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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